대규모 인프라 및 전력망 투자 공백 우려

최근 3년간 가파르게 오른 산업용 전기요금이 제조업 경쟁력의 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 전력비 상승이 기업들의 직접적인 비용 부담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과 경쟁국 간의 전기료 격차까지 확대되면서 “한국이 투자 기피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1년 kWh(킬로와트시)당 105.48원에서 올해 상반기 179.23원으로 70% 이상 올랐다. 한전의 부채 부담과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2022~2023년 전기요금이 일괄적으로 약 50% 인상됐고, 이후에도 산업용 전기요금만 추가로 오르면서 주택용을 앞질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용 전기료가 주택용보다 더 싸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전기요금 구조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기존 에너지 조달 비용 증가 등의 요인으로 요금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부담이 기업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력 다소비 업종의 부담은 날로 커진다. 석유화학·철강업의 경우 제조원가에서 전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안팎에 달한다. 그러나 업황 부진으로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일부 기업은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모두 전기료로 지출하는 상황까지 빚어진다. 실제로 동국제강은 지난해 1025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전기료로만 2998억 원을 부담했다. 포스코는 약 5000억 원, 현대제철은 약 1조 원을 전기요금으로 지출했다. 기업들은 전기료가 낮은 심야 시간대에만 설비를 돌리거나 조업을 중단하는 ‘셧다운’에 나서고 있지만 전력비 부담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 드라이브’도 전기료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확정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에선 산업계 사전할당량은 3차 대비 18.6% 줄었고 유상할당 비율은 늘었다. 특히 발전 부문의 배출권 구매 부담은 기후환경요금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을 부추겨 산업계에 ‘이중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전기화 흐름이 본격화하면서 전력 수요가 더 빠르게 늘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에 따르면 2024~2038년 국내 전력 소비는 연 2%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전기차 확산 등에 따라 2010~2023년 증가율(연 1.7%)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은 투자 매력도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2차전지·AI 데이터센터 등의 대형 설비 투자는 10년 이상 장기 계획으로 추진되는데, 전기요금의 예측 가능성과 전력 공급 일정이 불확실하면 핵심 투자의사 결정이 모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경쟁국들이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전력 생산비 절감, 전력망 보조금, 재생에너지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독일은 2028년까지 kWh당 0.05유로의 전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에 합의했다.
전기요금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을 떠난 사례도 있다. 폴리실리콘 제조업체 OCI홀딩스는 2020년 전북 군산 설비를 말레이시아로 옮겼다. 말레이시아의 전기료는 한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곳에는 동박 업체 SK넥실리스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진출해 있다.
일부 기업들은 자가발전, 전력도매시장 직접구매 등을 통해 전력 조달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한전의 정상화가 지연되고, 전력망 투자가 위축되며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박경원 대한상의 SGI 연구위원은 “공급 인프라와 제도적 유연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전반적인 전력 시장 제도 개선과 기술 혁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