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다시 '타다' 위에

비대면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겸영을 막는,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허가된 사업에 제동을 거는 법안이 추진된다는 점에서 업계에선 ‘제2의 타다금지법’으로도 불린다. 벤처 생태계가 올해 30년을 맞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타다' 위에 머물러 있다.

닥터나우는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특히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환자들이 처방받은 의약품을 찾지 못하는, 이른바 '약국 뺑뺑이'를 하지 않도록 재고 상황을 알려주거나 약국 정보를 제공한다.

정치권은 닥터나우의 이같은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닥터나우가 일부 제휴 약국을 우선 노출해 특혜를 준다는 지적하며 특정 약국 우선 노출이 알선 행위이자 환자 유인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런 사업 구조 내 리베이트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에 여당이 발의한 닥터나우 방지법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허가를 전면 금지하는 게 골자다. 앞서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닥터나우 방지법을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회사 측은 올해 국감에서 "지도 기반 노출 구조로 특정 약국 우대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는 2일 본회의에선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닥터나우는 창업 초기부터 기존 사업자들과 줄곧 갈등을 겪어 왔다. 코로나19 등으로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당시 정치권이 비대면 진료를 합법화하는 내용으로 입법 움직임을 보이자 기존 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원격의료 확대 계획과 비대면 진료 플랫폼 허용 철회를 강하게 촉구했다. 2020년 창업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직역 단체와의 갈등 구도 속에 갇혀 있던 셈이다.

닥터나우는 이미 사업을 영위 중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구체적 위법 사례가 없는데도 영위 중인 신산업을 사후적으로 불법화했다는 지적이 거세다. 문제는 이같은 지속적인 규제와 이로 인한 좌절이 빠르게 퍼지면서 청년들의 창업 의지를 조용히 꺾어나간다는 점이다. 스타트업·벤처 단체들이 연이어 입장문을 내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달 30일 벤처기업협회는 닥터나우 사태와 관련한 입장문을 엿새 만에 다시 내고 글로벌 기업들이 혁신에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우리는 혁신적 시도를 차단하며, 성장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업계는 "타다, 로톡, 삼쩜삼 등이 관련 직역단체의 반대에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창업에 도전하라는 것은 지독한 시대적 모순"이라고 쏘아붙였다.

닥터나우는 이번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면 의약품 도매상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곧 열리는 본회의가 사실상 닥터나우의 생존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과거 VCNC(타다)는 법적 다툼과 핵심 서비스 중단으로 경영 악화를 피하지 못하다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로앤컴퍼니(로톡) 역시 변호사 단체와의 장기간 갈등에 타격을 입고 직원 절반을 감원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닥터나우의 앞날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회사 측이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호소문을 보낸 것도 사업 중단과 미래 생존에 대한 절박함때문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내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났다. '우리는 청년, 현재에 도전한다'는 문구가 쓰인 거대한 배경을 뒤로 하고 마주 앉았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 번의 실패 후 네 번의 창업을 한 스타트업 대표를 향해 "용기가 꺾이지 않고 결실을 맺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런 응원과 지지가 무색하게 닥터나우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무조건, 무차별적으로 혁신을 옹호할 순 없다 하더라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연속돼야 한다. 초기에 단칼에 싹을 자르기보다 보완점을 찾고, 문제점을 다듬어 기존 업계와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수년 전의 갈등과 시행착오가 여전히 반복되는 지금, 미래 벤처 30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에선 창업생태계는 활성화될 수 없다. 결국 젊은 창업가들이 창업-엑시트-재창업을 하는 선순환 구조도 상상할 수도 없다. 혁신을 규제하느냐 아니면 관리하느냐, 어떤 방향으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미래 산업을 주도할지 추종할지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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