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주요국, 내년부터 기후공시 의무화…한국만 ‘출발선’ 못 섰다

싱가포르·홍콩·중국 '내년부터 의무 공시'…日은 '법제화' 초강수
韓 로드맵 지연에 기업만 골탕…법정공시·세이프하버 도입 시급

▲국내외 ESG 전문가들이 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열린 '아시아 기후금융 활성화 포럼'에서 '아시아 기후 공시 제도 현황 및 과제'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박민석 기자 mins@)

싱가포르와 홍콩, 중국 등 아시아 주요 경쟁국들이 내년부터 기후공시 의무화에 돌입하며 글로벌 자본 선점에 나선다. 반면 한국은 금융당국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로드맵 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기후 경쟁력이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 12층에서 열린 '아시아 기후금융 활성화 포럼'에서는 아시아 주요국의 기후 공시 제도 수립 현황과 국내 도입 과제가 집중 논의됐다. 이날 전문가들은 기후 공시를 단순 규제가 아닌 자본 유치를 위한 인프라로 정의하며 정부의 조속한 로드맵 수립과 법제화를 촉구했다.

싱가포르·홍콩·중국 "자본 유치 위해 내년부터 공시"

이날 첫 번째 세션 발제에 따르면 아시아 선진국들은 이미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자국 제도에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속도전에 돌입했다. 이들은 당장 올해 발생한 기후 대응과 오염 통제 등 탄소 데이터를 집계해 내년에 첫 의무 공시 보고서를 내놓을 전망이다.

줄리아 테이 EY 아태 공공정책 리더는 "싱가포르는 신뢰받는 녹색 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상장사는 내년부터 스코프 1·2(직접·간접 배출)를 의무 공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 부담이 큰 '스코프 3(공급망 포함 배출량)'에 대해서도 "2026년부터 의무화된다"고 설명하며 비상장 대기업까지 순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임을 명확히 했다.

홍콩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본 캄 PwC 중국&홍콩 파트너는 "홍콩은 올해 1월 1일부터 상장 규칙을 개정해 기후 공시를 의무화했으며 ISSB 기준과 완전히 일치하는 기준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역시 상해·심천·북경 거래소 지침에 따라 주요 지수 편입 기업은 올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년 4월 말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본은 앞선 국가들보다 시점은 1년 늦지만, 법적 강제성을 무기로 내세웠다. 히데푸사 이이다 도쿄대 교수는 "일본은 금융상품거래법(FIEA)에 근거해 유가증권보고서(한국의 사업보고서 해당)에 기후 정보를 기재하도록 법제화했다"고 설명했다 . 일본은 도쿄증권거래소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 마켓' 상장사(시총 3조 엔 이상)를 대상으로 2027년 3월 결산기부터 의무 공시를 시작한다. 이이다 교수는 "기후 공시는 글로벌 투자자와의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

"韓, 로드맵 실종에 기준마저 후퇴… 법정 공시 시급"

반면 한국의 기후 공시 준비 상황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현영 서울대학교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는 발제에서 아시아 선진국들과 달리 금융위가 ESG 공시 도입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 뒤 구체적인 의무화 시기와 대상이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지 변호사는 현재 논의 중인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기준(KSSB)이 글로벌 표준보다 완화된 점도 문제로 거론했다. 그는 "KSSB 초안은 기업 부담을 이유로 스코프 3 공시 의무화를 유예하거나 시기를 미정으로 남겨뒀다"며 "국내 기준이 글로벌 정합성에 미치지 못할 경우 우리 기업들이 해외 자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또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정 공시' 도입이 필요하다고도 제언했다. 지 변호사는 "국제 정합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일본과 같이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에 기후 정보를 포함하는 법정 공시로 가야 한다"며 "다만 도입 초기 기업들의 소송 부담을 고려해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책임을 면제해주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에서는 최종 KSSB 기준이 연내 발표될 것이란 전망에도 늦은 공시 도입에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웅희 한국회계기준원(KSSB) 상임위원은 "KSSB는 올해 말까지 국내 ESG 공시 기준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기준이 발표되면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가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과 법제화 논의를 진행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장에 참석한 기업 실무자들은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 제조업계 ESG 담당자는 "유럽 등 해외에서는 ESRS 등 당장 공시 규제를 적용 받는데 국내에서는 로드맵 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국내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해외 시장에 나갔을 때 기준 미달로 페널티를 받거나 사업 철수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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