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교섭창구 단일화’ 흔드는 노란봉투법

임인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공인노무사

원·하청 노조 섞여 협상요구 불보듯
1년 내내 교섭 우려…산업현장 혼란
원칙 지키며 취지 살릴 방안 찾아야

운동회 단골 종목인 2인 3각은 두 사람이 발을 묶고 호흡을 맞춰 뛰는 경기다. 노동현장에도 이 경기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노조가 수십, 수백 개가 되더라도 사용자와 발을 묶고 뛸 파트너는 딱 ‘하나’로 정해오라는 것이다. 그래야 엉키거나 넘어지지 않고 질서 있게 완주할 수 있다는 취지다.

노동조합법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있으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치도록 규정한다(제29조의2). 여러 노조가 제각각 교섭하면 혼란스러우니, 대표 선수 하나를 뽑아 사용자와 2인 3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 노동조합법, 혹은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면 사용자로 본다(제2조제2호). 하청 근로자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제는 원청에도, 수많은 하청 업체에도 각각 노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형 사업장의 경우 이론적으로 수십 개의 노조가 동시에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여기서 창구 단일화라는 기존의 제도와 사용자 확대라는 변화가 충돌한다. 원청과 수많은 하청이 뒤섞인 이 복잡다단한 관계를 과연 법이 말하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묶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모두 한데 묶여 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근본적인 의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일각에서는 애초에 교섭창구 단일화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원청과 하청은 엄연히 별개의 법인이다. 따라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전제로 한 창구 단일화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다. 각 하청 노조가 별도 절차 없이 원청과 교섭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편에서는 법문상 ‘사업 또는 사업장’은 하청을 의미한다고 본다. 하청 내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하였다면 원청과 교섭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만약 원청 사업장을 기준으로 창구를 단일화한다면, 수적 우위를 점한 원청 노조가 교섭권을 독점하고 하청의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배제된다는 우려가 이 주장에 힘을 싣는다.

다른 편에서는 개정법이 실질적 지배력을 갖는 원청을 사용자로 보는 이유에 주목한다. 원청이 해당 사업장 내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섭 단위가 되는 ‘사업 또는 사업장’ 역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원청 사업장으로 보는 것이 정합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용자 개념은 원청으로 확대하여 놓고, 교섭 절차만 하청 단위로 쪼개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된다는 취지다.

정부도 ‘원청’ 사업장을 기준으로 시행령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할 시 교섭 당사자인 원청 사업장을 기준으로 창구 단일화가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즉, 원청 사업장 단위를 원칙으로 세우되,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막기 위해 교섭단위 분리라는 장치로 교통정리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행령(제14조의11)을 대폭 보강하여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단순히 근로조건의 차이(제1호)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고용형태(제2호)와 교섭 관행(제3호)은 물론, 노동조합 간 갈등 유발 가능성이나 당사자들의 의사(제4호)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분리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억지로 묶지 말고, 현격한 차이가 있거나 당사자들이 원하면 가위로 끈을 끊어 각자의 레인에서 뛸 수 있게 하여 주겠다는 말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몸은 하나인데 여러 개의 레인을 동시에 뛰어야 하거나, 한 레인을 완주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다른 하청 노조와의 교섭을 위해 또 다른 레인으로 달려가야 하는 고단한 경기가 예고된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만능열쇠일까. 사용자 입장에선 경영 효율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수십 개 하청 노조가 각각 분리되어 교섭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원청은 1년 365일 교섭만 하다가 셔터를 내려야 할지 모른다. 반면 하청 노조는 교섭단위 분리를 시도할 유인이 충분하다. 거대 원청 노조와 한 묶음이 되는 순간 교섭대표권을 잃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청 노조들은 독자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하청 노조는 살길을 찾아 필연적으로 분리를 신청할 것이고, 노동위원회는 완화된 시행령 기준에 따라 이를 승인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내세운 ‘원청 사업장 단위 창구 단일화’라는 원칙은 공허한 선언에 그치고 만다. 운동장은 여러 하청 노조가 제각각 교섭을 요구하며 각자의 레인에서 따로 달린다. 이러한 교섭단위 분리의 활성화가 역설적으로 기존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자체를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인 3각의 끈을 쉽게 끊어주면 어떻게 되는가. 경기의 성격이 달라진다. 가위질이 남발되어 원칙이 형해화될 경우, 교섭 비용의 폭증과 현장의 혼란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외가 원칙을 삼키는 사태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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