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위해서라도 전달체계 개편 시급

“한국 의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의료전달체계 논의를 반복하는 단계는 끝났고, 이제는 실행과 결정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 확립 정책포럼’에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현행 제도가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과 지역 의료 공백, 비용구조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실장은 “한국의 의료체계는 빠른 시간에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도권 집중과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각해졌다”며 “이는 결국 의료 이용 격차와 건강 수준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의료 공급자 이해관계, 지역 격차, 건강보험 재정, 환자 의료접근성 논리가 충돌하면서 개선 논의가 20년째 제자리”라며 “이제 정부가 설계 원칙과 운영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환자들의 상급종합병원 집중 현상에 대해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 실패의 결과”라고 규정하며, △상급종합병원 기능 재정립 △지역 병원 역할 구분 △진료회송 내실화 △전달경로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률 차등 적용 등이 포함된 단계적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어 신 실장은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치매 환자 급증으로 의료비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전달체계 개편 없이 의료비 구조를 버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박은철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장은 더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박 소장은 “한국에는 학문적 의미의 의료전달체계가 없다”며 “현재 구조는 보험 환자 진료 방식에 가깝고, 단계별 게이트키핑 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 소장은 “1990년대 폐지된 대진료권·중진료권 체계가 폐지되면서 상급종합병원 이용 시 본인부담금만 다른 수준”이라며 “환자가 ‘대형병원 가지 말라’는 메시지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환자가 지역 병원을 신뢰하지 못하니 KTX를 타고라도 서울로 오는 것이다. 지역 병원이 충분히 진료할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지역별 수요 기반 모델 설계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방정부의 역할이 크게 확대돼야 한다”며 “중앙·지방정부 협력, 1차 의료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연계된 복합 서비스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진식 대한병원협회 제2정책위원장(세종병원 이사장)은 그동안 정책이 1차 의료기관과 3차 의료기관 중심으로 설계돼 2차 병원이 소외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처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장거리 이동 진료가 당연시되는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지역 2차 의료기관 육성 및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도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은 중증·응급환자 진료 역량을 분산시키고 지역의료 기반을 약화시킨다”며 △의원–병원 간 협진체계 강화 △외래 중심 다학제 협진 △수가·보상체계 개편 등을 제안했다.
행사를 주최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역 격차와 필수의료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함께 제도적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피력했다.
이성규 대한병원협회장은 “의료인력과 시설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역에서는 적시에 적정 진료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의료기관·학계가 함께 지속 가능한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