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태양광ㆍ철강ㆍ베터리시장 등 잠식
기술경쟁력 증시로 환율 영향력 감소

원화 약세가 오래된 ‘수출 호재 공식’을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통상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개선되지만, 이번 고환율은 일본의 초(超)엔저와 중국의 초저가 공세가 동시에 겹치면서 오히려 국내 기업의 마진 압박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경기 둔화와 고환율 장기화가 맞물리며 업종 전반에 ‘역풍’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외환 시장에 따르면 최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50엔 중반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일 도쿄 외환시장에선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6엔까지 치솟았다. 일본 기업은 동일한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어 자동차·기계·화학 등 한국 주력 품목 전반에서 가격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일본 업체의 가격 인하 압력이 높아지며 해외 시장에서 단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공작기계 분야에서도 일본산 장비가 가격 대비 성능 우위로 수주를 선점하며 국내 업체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엔저 현상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가 개최한 ‘추락하는 엔화’ 세미나에서도 지적됐다. 당시 츠토무 와타나베 도쿄대 교수는 “엔저는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을 끌어올리지만,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한국에는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중국발(發) 가격 공세도 거세다. 태양광·철강·배터리 소재 등에서 중국의 초저가 물량이 글로벌 시장을 잠식하며 한국 제조업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들어 중국 내 경기 둔화와 재고 누적이 이어지면서 밀어내기 수출이 더욱 확대돼 당시보다 체감 강도는 더 커졌다는 평가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무역연구원은 “가격으로 중국과 경쟁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고대역폭 메모리(HBM), 대형 OLED, 프리미엄 가전, LNG 선박처럼 한국이 기술 우위를 가진 분야를 중심으로 ‘코리아 시그니처’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쟁 압박 속에서 국내 기업의 원가 부담은 고환율로 더 커지고 있다. 달러로 결제되는 원자재·부품 가격이 치솟으며 수출 마진이 빠르게 악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수출 기업 관계자는 “판매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일본·중국 업체가 버티고 있어 단가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환율이 올라가도 남는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종별로 체감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환율은 대부분 산업에 걸쳐 공통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이오·반도체·배터리·철강·석유화학·정유·디스플레이 등 주요 제조업 전반에서 원자재·부품 수입비 증가와 해외 공장 투자비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비용 부담이 누적되는 양상이다. 조선·자동차 등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은 단기적으로 환율 상승의 긍정적 효과를 일부 누릴 수 있지만, 이들 역시 고환율 장기화에 따른 원가 상승과 수요 위축, 해상운임 부담 증가 등 부정적 요인을 더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환율 자체의 효과가 약화된 구조적 변화도 주목된다.
산업연구원(KIET)은 “2010년 이후 세계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이 중시되면서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보다 뚜렷하게 약화됐다”고 설명한다. 자동차·디스플레이·반도체 등 기술 집약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실질실효환율(REER) 변동이 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민감도가 줄어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