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태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前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고객집중·기업가정신 더욱 강조돼
데이터 기반 디지털 경쟁력 키워야

1982년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트먼이 쓴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은 경영학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만든 책으로 평가된다. 당시 미국 기업들은 일본식 경영 모델의 도전에 직면해 있었고, 품질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서 43개의 미국 기업들을 연구하여, 초우량기업의 공통된 성공조건을 분석하여 제시함으로써, 경영자들에게 기업이 장기간 성공과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출간 직후 이 책은 전 세계에 3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경영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경영은 사람과 가치 중심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널리 확산시켰다. 이는 당시까지 주류였던 분석 중심, 재무 중심 경영에서 벗어나, 실행 중심, 사람 중심의 경영 패러다임을 강조한 혁신적 시도였다. 이 책의 영향력에 고무되어, 이후에 수많은 기업 성공 지침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초우량기업들의 공통된 조건들을 실행 중시, 고객에게 집중, 자율성과 기업가정신, 사람을 통한 생산성 향상, 가치 중심 리더십, 핵심역량 집중, 단순한 조직구조, 온건함과 엄격함 동시 보유 등 8가지로 제시했다. 이 조건들은 지금도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번영하기 위해 지켜야 할 핵심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출간 이후 43년이 흘렀고,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디지털·인공지능(AI) 전환, 글로벌 경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그리고 고객경험 혁신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8가지 조건 중에서도 특히 다음 성공 조건들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첫째, ‘사업(business)’ 측면에서 보면 ‘고객에게 집중’과 ‘실행 중시’가 더욱 핵심조건이 되고 있다. 시장 및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빨라진 오늘날 고객에게 집중(close to the customer)하고 빠른 실험과 실행 중시(bias for action)를 통해 신규사업에 진출하고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고객의 경험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고객의 성공을 지원하는 기업이 성장하고, 빠른 의사결정과 투자를 통해 철저한 실행력을 보이는 기업이 성공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는 웹툰과 쇼핑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생활 패턴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사람(people)’ 측면에서 보면 창의적 조직 문화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창의적 인재를 유치하고,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카카오는 계열사별 독립 운영을 통해 다양한 신사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셋째, ‘사명(mission)’ 측면에서 보면 ‘가치 중심 리더십(hands-on, value-driven)’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기업 미션을 공유하며, ESG와 윤리적 경영, 사회적 책임을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삼성, 현대, SK는 모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AI 시대의 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책임있는 혁신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초우량기업의 조건’은 발간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간 많은 경영환경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업경영에서는 더 추가되어야 할 성공조건들도 필요하다. 특히 최근의 AI 열풍과 ESG 확산 등을 반영하여 AI 및 데이터기반 경영과 지속가능 경영이 새로운 성공조건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ata-driven decision making)’은 디지털 시대 경쟁력의 핵심이며, 기업은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AI와 분석 기술을 통해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맥킨지의 2025년 보고서는 AI가 기업 생산성을 최대 4조40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아울러 ‘지속가능성과 책임 있는 혁신(sustainability & responsible innovation)’은 기업이 장기적 생존과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ESG와 윤리적 기술 활용을 통해 기업은 단순한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맥킨지의 2024년 보고서는 기술혁신이 기업 운영에 가치를 더하려면 지속가능성과 책임성이 필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초우량기업의 조건’ 책에서 제시한 8가지 성공조건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더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지속가능성과 책임 있는 혁신을 추구하고 실행하는 기업들은 미래의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혁신기업의 성공 조건은 시대에 따라 일부 변형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고객을 중심에 두고, 사람과 가치를 존중하며, 기술과 지속가능성을 결합하는 기업만이 미래의 초우량 혁신기업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