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패스트트랙 충돌’, 살려는 드릴게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충돌’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0일 1심에서 벌금 총 2400만 원과 19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 외에 강효상·김명연·김정재·민경욱·송언석·윤한홍 등 당시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모두 벌금형 유죄다. 다만 국회법 상 회의 방해죄 부분이 모두 벌금 500만 원에 못미쳐 의원직 상실형(피선거권 제한)은 면했다. 이날 재판부는 “국회 충돌은 면책특권 대상도, 저항권 행사도 아니다”면서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숙의의 전당에서 민주적 입법활동을 방해했다”며 “발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 신뢰를 저버렸다”고 질타했다. 국민 신뢰를 저버린 의원들의 행태를 크게 꾸짖으면서도 ‘살려는 준’ 셈이다.

2019년 정국을 뒤흔든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한국 정치의 난맥상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였고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회의실 봉쇄, 의안과 점거, 동료 의원 감금·폭행 등으로 이어진 과정에서 그 유명한 ‘빠루’가 등장하기도 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에도 20세기 유산으로나 생각했던 ‘동물 국회’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을 보여주며 한국 정치문화의 낙후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국회법 위반 여부를 가리면 되는 단순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날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6년 7개월이 걸렸다. ‘날’로 계산하면 사건 발생으로부터 무려 2401일 만이다. 피고인이 의원 수십 명에 달하는 데다 증인도 많고 증거구조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다양한 이유로 피고들이 불출석하면서 재판이 공전한 때문이다. 정치적 사건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긴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사건은 정치적 격돌을 법원으로 가져간 또 하나의 전례를 남겼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이 법을 위반해 재판에 넘겨진 첫 사례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폭력 금지 약속’을 스스로 깨트렸다는 점에서 오점으로 남는다. 지키라고 만든 법을 입법권자들이 스스로 무시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치가 풀어야 할 일을 사법 절차에 묻는 게 온당한가의 문제도 남는다. 사법 시스템마저 정치에 끌어들여 공연한 공권력 낭비를 자초했다.

패스트트랙 사건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제로섬 충돌’의 프레임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국회가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해야 하는지 교훈도 남긴다. 법과 제도는 완비됐지만 정치적 신뢰가 없다면 어떤 절차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제도적 통로가 있지만 이를 둘러싼 정치적 합의가 없으면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증명한 것이다.

생산적인 토론과 공론의 장이어야 할 국회는 여전히 ‘동물국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 정치가 다시는 폭력과 사법화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합의에 기반한 의회 운영 원칙을 되살리고 제도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패스트트랙이 남긴 상처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반복되지 않도록 새겨야 할 정치사회적 경고다.

여기서 잠깐, ‘대장동 항소 포기’를 두고 다시 격돌하고 있는 최근 국회. ‘크게 혼내면서도 살려는 준’ 이번 패스트트랙 1심 선고에 대해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동물국회’를 넘어 ‘괴물국회’가 되지나 않을는지.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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