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교육은 생존교육⋯모의체험 등 교구재 다양화해야" [금융교육 골든타임⑨]

보이스피싱과 고수익을 미끼로 한 불법 투자 권유가 메신저를 타고 오가는 사이 아이들은 보호막 없이 금융시장의 최전선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금융교육 정부 예산은 제자리에 묶여 있다. 지금 세대에서 금융 문해력을 키우지 못하면 다음 세대 전체가 금융사기의 상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번 기획은 '금융교육 골든타임'을 붙잡기 위해 예산과 제도, 현장의 목소리를 함께 짚어 '우리 아이 첫 금융교육'의 빈틈과 해법을 제시한다.

보이스피싱과 고수익 미끼, 사이버 도박이 게임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이들의 일상까지 파고들고 있다. 손쉽게 게임 아이템을 사고 익숙하게 간편결제를 누르지만 정작 예·적금의 기본 개념도, 대출로 인한 빚의 무게도 제대로 배우거나 느껴본 적 없는 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금융 문맹’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학교의 금융교육은 여전히 용돈기입장 쓰기와 이벤트성 체험에 머물러 있고 교사 연수·콘텐츠·예산은 현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고승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전 금융위원장ㆍ태평양 고문), 김성욱 금융감독원 민생금융 부원장보, 이항 KB금융공익재단 사무국장, 최환희 청년금융교육연구소 소장 등 4명의 전문가와 함께 금융교육 목표와 우선 순위, 제도와 현장 문제점, 해결 방안을 짚어봤다.

"금융교육은 생존교육"…미래세대 지키는 필수과목

지상좌담회는 "왜 지금, 금융교육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고 회장은 "금융환경 자체가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예전에는 은행의 금리가 높아 예금만으로도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불릴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저금리·고령화 속에서 고위험 금융상품이 판매되고 금융사기가 급증하면서 금융환경이 위험·복잡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단순히 돈을 저축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금융 위험을 인식하고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 즉 금융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결국 금융교육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 소장 역시 이런 현실을 '미래 세대의 생존'이라는 단어로 연결해 풀어냈다. 그는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격변의 시대에 중산층을 탄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금융교육 뿐"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캄보디아 고수익 미끼에 청년들이 빠져든 현실을 짚으며 "이러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의무교육 과정에 금융교육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체 학생 6.4%만 금융교육…"예산부터 막혔다"

전문가들은 금융교육 사각지대를 만드는 원인으로 '예산'을 꼽았다.

고 회장은 "금융교육은 예산·인력·콘텐츠가 균형 있게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는데 예산이 취약하다"며 "예산 부족으로 청소년들이 충분한 금융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33만9263명의 초·중·고등학생이 금융교육을 받았다. 전체(515만여 명)의 6.4%에 불과하다.

금융교육 최전선에 있는 최 소장도 같은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건 정책 결정권자들이 금융교육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문제로 인식하고 예산을 투입하면 인력과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콘텐츠만 쌓아두면 아무도 안 본다"며 "지역 청년과 주민을 대상으로 한 현장 강의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김 부원장보는 제도와 프로그램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했다. 그는 "올해 고교 교과목에 '금융과 경제생활'이 신설됐다"며 "보다 많은 학교에서 채택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교과를 채택하지 않은 학교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1사 1교 금융교육, 자유학기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교과는 생겼지만…교사·콘텐츠는 '초기 단계'

교과 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이 포함됐다고 해서 현장이 곧바로 바뀌는 건 아니다.

이 사무국장은 "제도적 틀이 마련된 것은 매우 큰 진전"이라면서도 "다만 현장은 적격 금융교사는 물론 실용적 학습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금융관련 연수 이수를 필수화하고 인증제·예산·성과평가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생들이 금융교과 과목을 선택하게 하려면 실제 도움이 된다는 체감이 있어야 한다"며 "체험형·디지털 기반 학습을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 확충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 부원장보는 교사 연수와 교구 지원을 통해 이런 문제를 메우겠다고 했다. 그는 "교사의 수업역량 제고를 위해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더 재미있고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카드게임 등 수업용 교구재를 제작·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최 소장은 '교구의 다양성'을 지적했다. 그는 "금융교육은 롤플레잉(역할게임)이 필수이기 때문에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다"며 "모의로 무언가를 경험하고 작성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매우 훌륭한 교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체험 세대에 맞춘 콘텐츠 필요…"모의게임 많이 해봐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도 의견이 이어졌다.

이 사무국장은 "지금의 학생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체험 세대"라며 "따라서 금융교육도 강의 중심에서 벗어나 시뮬레이션 기반의 체험형 콘텐츠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제안했다. 그는 "금융은 추상적이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게임을 통해 재미있게 금융을 배우는 게이미피케이션 원리를 적용해 사용자들의 참여와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 소장은 콘텐츠 설계할 때 재미나 화려함보다 '실전 기술'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어, 영어 등 학문적인 교과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콘텐츠가 유용하겠지만 금융교육은 '실전의 사냥 기술'처럼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의 게임을 많이 해봐야 한다"며 "실제와 똑같은 게임 속에서 실패하고 당황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취약계층·지역격차 심각…"전문 교육기관 설립해야"

취약계층과 지역의 금융격차 문제도 테이블 위에 올랐다. 최 소장은 "취약계층은 금융 리스크에 너무나 크게 노출돼 있다"며 "청소년의 금융 지식은 부모를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빈틈을 지방자치단체 등 국가가 채워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기관 출자 하에 금융교육 기관을 공동으로 설립해 전국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건의했다.

지역 격차에 대해서는 "도심과 지방의 교육 격차는 전 세계의 문제이기 떄문에 해소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온라인 화상교육과 지자체 단위 예산을 활용하면 적어도 체감 격차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자체 단위로 금융교육 예산을 따로 둬서 고등학교와 지역 청년 및 지역민들에게만 강의해도 훨씬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웰빙·가치관·태도…'진짜 금융교육'의 목표는

'진짜 금융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한데로 모였다. 지식에 태도·습관·가치관을 더해 '돈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 회장은 금융교육이 '금융웰빙(Financial Wellbeing)'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일상 속 금융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금융 충격으로부터 안전한 상태를 말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금융 지식을 전달하고 올바른 금융 습관과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교육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금융웰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사무국장은 '태도와 습관'을 꺼냈다.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태도와 습관 형성을 통한 금융가치관 확립이 금융교육의 본질"이라며 "돈을 단순히 아는 것에서 나아가 '돈을 다루는 책임감 있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최 소장은 이 두 가지를 '금융 가치관'이라는 단어로 묶었다. 그는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우는 건 개인의 영역"이라며 "돈을 잃지 않고 그로 인해 삶이 달라지지 않는 실질적 생존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교육은 살면서 꼭 알아야 할 필수 지식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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