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후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한 신축 아파트 단지 재활용 집하장 한쪽에는 눈에 띄는 노란색 드럼통 모양의 '이차전지 전용 수거함'이 설치돼 있었다. 이 수거함은 서울시가 화재 위험성이 큰 이차전지의 안전한 처리를 위해 도입한 '안전망'의 핵심이다.
보조 배터리와 무선 이어폰, 전자 담배, 휴대용 선풍기까지. 리튬이온 배터리로 대표되는 이차전지는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사용 후 버려지는 폐배터리는 '도심 속 화약고'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한국배터리순환자원협회 통계에 따르면 전국 이차전지 수거량은 2021년 75t(톤)에서 2023년 131t으로 증가했다. 이후 2024년에는 166t으로 매년 급증세다.
실제로 이차전지가 일반 생활 쓰레기나 재활용품에 섞여 배출되면서 주요 자치구 내 자원순환센터와 재활용선별장에선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에도 대형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는 이차전지 폐기물 배출 단계부터 안전 관리 체계를 선도적으로 구축하며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9월 말부터 주민센터와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이차전지 전용 수거함 설치를 시작했다. 동대문구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폐기물 수거 업체 관계자는 “이차전지 전용 수거함 설치 사업 시행 이후 아파트 단지 내 전용 수거함을 확인해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보조 배터리와 전자 담배 등 이차전지 폐기물이 분리 수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단지 내 전용 수거함에는 다 쓴 보조 배터리와 건전지가 많았다. 수거 업체에 따르면 이 단지(1048가구 규모)에선 이차전지 폐기물이 약 3주마다 20㎏ 마대 자루를 가득 채울 정도로 발생한다.
이번 이차전지 전용 수거함 설치는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EPR(생산자책임재활용) 대상이 기존 중·대형 가전제품 50종에서 중·소형을 포함한 모든 전기·전자제품으로 확대하는 것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이다. EPR은 제조·수입·판매업자에게 제품의 회수·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를 뜻한다.
이번에 보급되는 전용 수거함은 정부의 '폐전지 수집·운반·보관 안전 가이드'에 따라 특별 제작됐다. 화재에 강한 내열 금속 재질과 뚜껑이 있는 밀폐형 구조로 설계됐다. 만약 수거함 내부에서 배터리에 불이 붙더라도 산소 유입을 차단해 불길이 밖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 금고'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사업이 전기·전자제품 생산자 공제조합 'E-순환거버넌스' 협력을 통해 추진된다는 것이다. E-순환거버넌스는 생산자의 제품의 회수‧인계‧재활용 의무를 대행한다. 시는 7월 E-순환거버넌스와 '폐가전·폐전지 안전수거체계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E-순환거버넌스는 △전용 수거함 무상 보급 및 설치 △폐배터리·폐가전의 수거 및 운반 △전문 재활용업체 인계 등 수거·처리의 전 과정을 전담한다. 시는 2차 지 안전수거함 설치 장소 등을 지원하고 분리배출 홍보를 담당한다.
이렇게 수거된 폐전지는 안전하게 전문 재활용 시설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리튬, 코발트, 구리, 철 등 핵심 광물자원을 추출해 자원화해 환경 보호는 물론 경제적 가치 창출에도 기여하게 된다. 다만 이차전지 폐기물의 안전한 배출과 수거를 위해서는 배출 요령을 숙지하고 이를 준수하는 시민 협조가 필요하다. 이차전지 내장 제품은 전지를 분리하지 말고 제품 원형 그대로 전용 수거함에 넣어야 한다. 또 배출 시에는 가능한 방전 상태로 배출하고 단자가 노출된 경우 절연 테이프 등으로 마감하는 것이 권장된다.
권민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은 “서울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선도적으로 안전 수거 체계를 도입해 화재 위험을 줄이고 있다”며 “시민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차전지 폐기물을 배출할 수 있도록 E-순환거버넌스와의 협력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