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 달러 의무는 그대로
환율 급등 후 숨 고르기…경계 여전

원·달러 환율 불안이 고조된 가운데,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로 외환 시장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미 투자 특별법'의 세부 내용과 이행 방향이 여전히 안갯속인데다 국민연금·기업·개인투자자까지 해외 주식 투자에 나서면서 1450원 대 안팎의 고환율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올해 들어 14일까지 연평균 환율(주간 거래 종가 기준)은 1415.28원을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시기인 지난 1998년(1394.97원)보다 높은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초 계엄 사태와 미국의 관세 압박 여파로 1487.6원까지 치솟았다. 5월 이후엔 1300원대에 안착하는 듯했지만 9월 다시 1400원대로 올라섰고 이달 들어서는 장중 1470원대까지 치솟았다.
팩트시트가 발표된 14일 오전 1474.90원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외환 당국의 구두개입에 1450원대까지 떨어졌다.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2000억 달러(약 291조1000억 원) 대미 직접 투자와 관련해 "한국 외환시장 불안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데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며 "어느 특정 연도에도 연간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액수의 조달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돼 있다.
그동안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 계획이 원화 약세를 유발하는 핵심 리스크로 지목된 만큼, 외환시장 영향을 완화하려는 조치다.
문구에는 "한국은 미화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조달함으로써 시장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투자 이행이 원화의 불규칙한 변동 등 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 한국은 조달 금액과 시점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조달 금액과 시점 조정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관련해 "신의를 갖고 적절히 검토한다"고만 명시해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상태다. 조달 액수와 시점을 요청받을 때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류진이 KB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팩트시트 세부 내용이 기존 발표 내용에서 크게 변화한 것은 없었지만 발표가 기대보다 늦어지며 생겼던 불확실성은 일단락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간 200억 달러로 상한이 제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조달 방법에 대해 시장의 우려가 남아있는 만큼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후 원·달러 환율 흐름은 수급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국민연금과 보험사, 기업뿐 아니라 서학개미로 대표되는 개인의 해외투자가 구조적으로 늘었다"며 "경상수지 흑자에도 구조적인 달러 유출 확대가 원화 약세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이달들어 14일까지 36억3000만 달러어치의 해외주식을 사들였다. 역대 최대치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에서만 9조1280억 원을 쏟아냈다.
이에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연고점인 1480원대를 넘어 150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외환 당국 개입으로 환율 상승세가 일단 진정된 것은 맞지만 증시 조정 국면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외국인 주식 자금 이탈도 이어지고 있어 환율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발동 레벨로 추정되는 1480원대 초반이 심리적 저항선이 될 수 있고, 이 선을 뚫을 경우 1500원선 도달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