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까지 AI 외쳤지만…느리기만한 '국회의 시간' [국회에 묶인 국가 경쟁력]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내놓은 경제·산업 메시지의 한가운데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9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의 1호 안건도 ‘대한민국 AI 액션플랜’이었다. 정부는 이 위원회 목표를 ‘글로벌 AI 3대 강국(AI G3) 도약’, 정책축을 ‘AI 혁신 생태계·AI 고속도로·범국가 AI 대전환’으로 못 박았다.

하지만 국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다. AI 산업을 뒷받침할 핵심 법안 20여 개가 상임위원회 문턱에서 멈춰섰다. “대통령까지 AI를 외치는데, 정작 법과 규칙은 제자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인프라 ‘AI 육성법·데이터센터법’ 중지

1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발의한 AI 관련 법안은 27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지난해 말 의결된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한 건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상임위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AI 관련 계류 법안 가운데 핵심축은 산업·인프라·인재·교육, 네 개의 패키지로 나뉜다. 그러나 네 축 모두 ‘발의 후 소관위 회부’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가장 상징적인 법안은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강국 도약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6월 20일 제출)은 정부가 ‘인공지능산업경쟁력강화전략계획’을 수립하고, AI 메가클러스터 지정·조성, 인공지능산업진흥특별회계 설치, 데이터센터·컴퓨팅 인프라 지원 등을 담고 있다. 이름 그대로 ‘AI 강국 도약’을 위한 산업 육성 상위법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관련 소위원회에 회부됐을 뿐 5개월째 과방위에 계류된 상태다.

AI 인프라의 핵심인 데이터센터를 별도로 다루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진흥에 관한 특별법안’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민수 민주당 의원이 9월 16일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경쟁력의 기반으로 보고 기본계획·실태조사·전담기관 설치, 전력·입지·세제·인허가 특례를 규정한 일종의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이다.

정부 공약에서 AI 데이터센터는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한 AI 고속도로이자 차세대 국가 사회간접자본(SOC)”으로 규정돼 있다. 공약에는 2030년까지 6G 상용화·AI 데이터센터 건설·국가 AI 혁신 거점 및 AI 집적단지 조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정작 이 공약의 법률 버전인 특례법은 접수 이후 ‘소관위 심사’ 단계에서 멈춰 서 있다.

여기에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9월 22일 대표 발의한 ‘인공지능산업 발전 특별법안’까지 더하면 산업·인프라 축만 3개의 제정법이 병렬로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AI 산업에 대한 규제가 모호할 경우 규제 적용을 면제·완화하는 규제샌드박스와 데이터·전력망·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지원 근거를 담고 있다.

◇AI ‘인재’와 ‘교육’도 발 묶여

AI 인재 법안은 여야가 사실상 초당적 구도다. ‘인공지능산업 인재 육성에 관한 특별법안’(정동영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5월 9일 발의돼 과방위에 계류 중이다. 법안은 과기정통부 장관이 5년마다 ‘AI 산업 인재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AI 인재육성위원회·거점대학 지정·장학금·해외 인재 유치 등을 규정한다.

‘인공지능인재 육성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은 김대식 국민의힘 의원과 김준혁 민주당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8월 20일 접수된 이 법안은 교육부 소관으로, 국가 AI 인재 육성·활용 기본계획, 특성화대학 및 기업부설 교육기관 지정, 인공지능인재혁신센터·인재육성재단 설립 등을 포함한다. 이 두 법안은 각각 과방위와 교육위에 나뉘어 계류돼 있다.

교육 현장을 겨냥한 ‘인공지능교육진흥법안’(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 대표 발의)도 9월 4일 발의 이후 교육위에 접수된 상태다. 이 법안은 국가·지자체에 AI 교육 기회 보장 의무, AI 교육 진흥계획 수립, 전문기관 지정·교원 양성·역기능 예방 대책 등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2030년까지 산업 AI 활용률·국민 AI 역량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는 것과 비교하면 교육·인재 법제는 거의 ‘개문 상태’에 가깝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이 가운데 80% 이상을 소관하면서 방송법·방통위 개편 등 정치 현안과 얽혀 AI 법안 심사가 뒷순위로 밀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과방위 관계자는 “과방위에 AI 관련 법안이 몰려 있지만, 예산안·방송 3법 공방에 가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AI 기본법은 일명 ‘마더법’으로, AI 혁신 생태계·인프라·데이터·거버넌스의 큰 틀만 제시한 상태”라면서 “후속 특별법과 개별법 개정이 따라와야 실제 지원과 규제가 작동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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