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미국 금융투자업계는 조용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물론, 고용통계ㆍ무역지표도 나오지 않았지요. 주요 경제 캘린더 가운데 통계 지표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기약 없이 ‘TBA(To Be Announcedㆍ추후 발표)’라는 단어만 채워져 있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지)으로 통계청이 문을 닫은 여파입니다.
셧다운은 월가 분석가들의 나침반을 빼앗았습니다. 밑그림이 사라졌으니 분석가들도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정보가 없으니 갈피를 못 잡고 있고 최근 숫자를 배제하니 방향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말 그대로 과거 데이터만 존재하는, 안개처럼 흐릿해진 상태를 말하는 ‘데이터 포그’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상태가 몇 주간이 이어지면서 데이터 포그는 더욱 진하게 우리 주변에 내려앉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데이터에 의존했는지, 이 숫자의 나열이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새삼 깨닫게 된 순간입니다.
그렇게 기준점이 사라진 사이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가 금융업계 전체를 뒤덮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셧다운 이전에 나온 예상치를 기준으로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물론 주요 정부의 금융정책 역시 명확하지 않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측성 정책만 내놓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멈추자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발언조차 힘을 잃었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우리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그러나 그들이 바라보고 분석해야 할 데이터는 이미 과거의 수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탓에 파월 의장의 발언은 공기처럼 가벼웠지요.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CPI를 대신해 일부 트레이더들은 민간 대체지표, 카드 소비 데이터, 공장 조업 비율을 조각조각 붙였습니다. 임시 지수입니다. 다만 이런 대안들이 오히려 투자업계의 공포심을 자극했습니다. 하나의 민간 수치가 크게 출렁이면 그 진폭이 그대로 주가와 금리에 반영되기도 했거든요. 데이터가 사라진 세계에서는 사실보다 소문이 진실이 되고 거짓 진실은 잘못된 정책을 결정합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정치적 갈등이 해소 기미를 보이면서 셧다운이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더 큰 혼란은 셧다운이 풀린 이후입니다. 깜깜이 통계에서 시작한 데이터 포그가 사라지면서 이제 ‘데이터 쓰나미’가 시작될 겁니다.
멈춰 있던 통계가 일제히 쏟아질 것입니다. 이미 엇박자를 냈던 정책과 시장이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한꺼번에 공개된 수치가 서로 충돌하면서 그 틈에서 변동성은 커지게 마련이니까요. 경제의 투명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그 반대는 단 한 번의 정치적 교착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발 데이터 포크는 작지 않은 교훈을 남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일 것이라고 주요 싱크탱크는 분석합니다. 경기와 시장ㆍ정책 등 세 가지 축을 떠받히는 힘은 결국 투명한 데이터라는 사실이지요.
이처럼 '멈춘 통계'는 정부 기능 중단을 넘어, 국가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 댑니다. 정부가 생산하는 수치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정책의 신호이자 경제의 언어입니다. 그 언어가 침묵하면 시장은 다른 언어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오차와 불확실성은 커지게 됩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우리는 '데이터의 신뢰성’이 지니는 공공재의 무거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부가 멈추면 통계도 멈추고, 통계가 멈추면 정책은 눈을 감는 구조이니까요.
197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국내총생산(GDP) 개념을 창안한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통계는 숫자 이상의 힘을 지녔고 한 나라 정책을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졌던 통계들, 통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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