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금담보대출도 6조3530억 원⋯1853억 원↑
단기 대출 급증 자금조달 구조 ‘빚 중심’ 이동
“레버리지 확대⋯시장 변동성 주의 필요”

‘빚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가계부채의 일정 수준 증가는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빚의 방향’이다. 최근 늘어나는 대출이 생계나 주거가 아닌 고위험 투자자산으로 흘러가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한때 4200을 돌파하고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신용대출을 통한 주식·가상자산·해외펀드 투자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대출의 양적 팽창이 질적 악화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차입 투자 확대는 충격 시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7일 기준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105조9137억 원으로 일주일 만에 1조1800억 원 넘게 늘었다. 지난 2021년 7월(1조8637억 원) 이후 약 4년 4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같은 기간 예금담보대출(예담대) 잔액도 6조3530억 원으로 1853억 원 증가했다. 예담대는 예·적금이나 청약통장 등을 담보로 설정해 예치금 범위 내에서 대출받는 상품으로 금리가 낮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고강도 대출 규제 속에서도 접근성이 높아 예금계좌를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단기성 신용대출과 함께 자금 조달이 점차 ‘단기 빚’에 의존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대출로 마련한 자금의 흐름도 심상치 않다. 지수가 급등할 때 포모(FOMO·소외 공포)를 느꼈던 투자자들이 변동성 확대 국면을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6조2165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동학개미운동’ 당시 고점(25조7000억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잠시 맡겨둔 대기성 자금을 뜻하는 투자자예탁금도 85조 원을 넘어서며 석 달 새 20조 원가량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레버리지 투자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위 금융당국자의 ‘빚투(빚내서 투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도 과열을 부채질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진의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표현에 주의하겠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문제는 빚투의 ‘질’이다. 신용거래융자는 하루만 빌려도 금리가 연 5%대 중반에 달하며 기간이 길어질수록 최고 연 9%까지 오른다.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 증권사는 담보 비율에 따라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반대매매(강제 처분)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주가 하락이 매도세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신용융자가 반도체·자본재 업종에 집중돼 있어 해당 업종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로 인한 낙폭이 커질 수 있다”며 “두 업종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시장 전반의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시스템 전반의 취약성 지표도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 금융취약성지수(FVI)는 32.9로 3분기 연속 상승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장 상승세를 이어갔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89.7%로 15분기 만에 반등했다. 단기 차입 중심의 가계부채 확대가 금융 불안을 키우는 최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빚의 '총량’보다 '구조’가 더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에는 초저금리·현금 중심의 장기투자였다면 지금의 투자 열기는 고금리 속 단기차입과 집중매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빚투 확산은 금리나 유동성 여건과 무관하게 투자 심리의 쏠림 현상이 강한 데서 비롯됐다”며 “개인투자자일수록 심리에 따라 무리하게 빚을 내는 투자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융자가 자본재·반도체 업종에 집중돼 있고 외국인 매수가 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며 “향후 환율 변동이나 대외 여건 변화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될 경우 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