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조직 8년 만에 상설조직으로 격상
"조직 안정 속 실행력 강화 시그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뉴삼성’ 시대의 초석을 다졌다. 사법 리스크 해소 이후 첫 조직개편에서 사실상 그룹의 ‘허브’ 역할을 해온 사업지원TF를 상설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격상시키고, 재무·전략 전문가 박학규 사장을 초대 실장으로 앉히며 경영 정상화의 속도를 높였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개편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8년간 이어져온 삼성의 비상체제를 공식적으로 끝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 회장이 ‘정현호 체제’를 마감하고 ‘박학규 체제’로 전환한 것은 경영의 중심을 ‘위기관리’에서 ‘미래준비’로 옮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7일 삼성전자는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을 회장 보좌역으로 위촉하고,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해 박학규 사장을 신임 실장에 임명했다. 조직은 전략팀, 경영진단팀, 피플팀 등 3개 팀으로 재편됐다.
사업지원실은 계열사 간 사업 조율, 경영진단, 인사전략 등을 맡는 핵심 기구다. 삼성전자는 “조직 안정화 차원의 조치일 뿐 컨트롤타워 부활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재계에선 “비상체제 종료의 신호탄이자 컨트롤기능의 정상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8년간 한시 조직이었던 사업지원TF가 ‘실(室)’로 복귀한 것은 경영이 위기관리 국면을 벗어나 체계적인 실행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라며 “이재용 회장이 이제는 그룹의 속도를 직접 조율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해석했다.

박학규 사장은 청주고·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삼성전자 DS(반도체)·DX(완제품) 부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쳤다.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재무·기획통이다.
하지만 ‘숫자만 보는 관리자’로 단정짓긴 어렵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많았고, 문과생이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S/W 관련 학과였던 KAIST 경영과학과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선택했다. 이 경험은 이후 박 사장이 단순한 재무관리자가 아닌, 기술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삼성의 한 임원은 “박 사장은 재무통이지만 동시에 기술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며 “AI·반도체·자동화 설비 투자와 같은 기술 의사결정에서 단순한 비용관리보다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읽어내는 능력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로 1983년 입사 이래 ‘삼성의 2인자’로 불렸던 정현호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해체 후 사업지원TF를 이끌며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 시기 그룹의 안정과 리스크 관리를 총괄했다.
그가 회장 보좌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경영이 안정궤도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매출 86조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HBM3E 등 AI 반도체 공급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실적 반전’을 이뤘다.
이번 개편은 연말 사장단 인사의 서막으로도 읽힌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 해소 후 처음 단행한 인사라는 점에서 향후 인사 폭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의 부회장 승진, 최원준 사장의 MX사업부장 승격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의 조직 재편이 예상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개편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뉴삼성 2기’ 출범을 위한 조직 정비”라며 “이 회장이 직접 이끄는 경영 정상화 단계가 시작됐고, 후속 인사에서 젊은 리더십과 기술 중심 인재가 대거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