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무는 방문자’에서 ‘지역과 일상을 공유하는 주민’으로
체류 → 관계 → 생활 → 정착…농촌소멸 대응의 새로운 경로

본지는 기획 시리즈 ‘체류형 쉼터, 농촌소멸 막을 열쇠’를 통해 정책과 현장,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차례로 짚어본다.
농촌을 찾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짧은 체험이나 여행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머물며 일상을 함께 보내는 ‘생활 체류’가 전국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 주 4.5일제 도입 논의와 원격근무 확산으로 ‘도시 4일·농촌 3일’이 현실적인 생활 패턴으로 부상하면서, 정부는 체류형 쉼터를 전면 추진해 체류에서 관계, 정착으로 이어지는 농촌소멸 대응 구조를 마련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단순히 인구를 ‘이동’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생활의 한 축을 농촌에 두는 장기적 관계 형성을 목표로 한 정책 방향이다.
최근 농촌 방문은 단순 관광을 넘어 정기적·반복적 체류로 확장되고 있다. 금요일 오후 농촌으로 이동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도시로 복귀하는 생활이 가능해진 것은 원격근무, 유연근무제, 주 4.5일제 논의 등 근로환경 변화로 개인 시간 배분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농촌은 ‘비일상’의 공간이 아니라 도시 생활을 보완하는 ‘생활의 확장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성우 농식품부 농촌정책국장은 “농촌을 체험하러 잠시 다녀가는 공간으로 두면 관계가 쌓이지 않는다”며 “체류형 쉼터는 도시민이 농촌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발판”이라고 말했다.
농촌 체류 경험이 길어질수록 도시와 농촌의 생활 비중이 역전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체류형 인구의 지역 커뮤니티 참여율이 정착 인구보다 더 높게 나타난 경우도 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체류가 단순 방문을 넘어 일상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이며, 체류 기간이 길수록 지역 관계망의 밀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흐름으로 풀이된다.

체류 방식은 다변화하고 있다. 도시민이 주말형 거주 공간(세컨드하우스)을 마련해 주기적으로 머무는 사례가 늘고 있고, 기업·프리랜서 대상 농촌 워케이션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카페·주민센터·빈집 등을 공유 오피스로 활용하는 ‘지역 순환형 근무’가 등장하며, 체류와 업무가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지자체들은 폐교·마을회관·유휴 공공건물을 리모델링해 공공형 체류형 생활센터, 공동 부엌, 커뮤니티 라운지를 조성하고, 농업·문화·생활 프로그램과 연계해 지역과 연결되는 일상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단순 숙소가 아니라 공동 텃밭, 정기 밥상 모임, 로컬푸드 공방, 생활문화 동아리 등 지역 생활을 매개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전북의 한 체류형 마을 운영자는 “체류 인구가 생기면 마을에서 ‘이웃’의 의미가 확장된다”며 “지역도 외부 사람을 손님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착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시간 속에서 발생한다. 농촌 정착 연구에서도 초기 1~3년간의 반복 체류 경험이 정착 여부를 크게 좌우한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촌 체류형 거점 운영모델 연구’와 ‘농촌관계인구 개념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농촌 정착은 외부 설득이나 단기 지원이 아니라 일정 기간 머무르며 생활 리듬과 지역 관계망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체류형 쉼터는 농촌이 자신의 생활에 맞는지 확인해보는 정착 전 단계의 경험 거점으로 꼽힌다.
정부는 체류형 쉼터를 ‘농촌 정착 인큐베이터’로 보고 △체류 △생활 프로그램 △공동체 활동 △정착 지원을 연계하는 모델을 설계·확산 중이다.
박 국장은 “도시민이 지역 주민과 일상을 공유하고, 생활 리듬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야 정착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며 “지자체와 협력해 체류 프로그램과 생활 서비스 연계를 강화하고 실제 이주까지 이어질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