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비상경제권한법’ 발동 적법성 최대 이슈
트럼프 ‘플랜 B’ 가동시 한국도 변동성 심화
베팅사이트서 정부 패소 확률 90%로 치솟아

대법원은 보수 성향 판사가 진보에 대해 우위를 보이지만, 먼저 열린 1심과 2심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패소한 데다 일부 보수 대법관들마저 정부 측 주장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면서 상호관세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최근 미국과 관세율 인하에 합의한 한국도 대법원의 결정과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에 따라 교역과 환율 변동성 확대라는 리스크를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
5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워싱턴D.C. 대법원 청사에서 관세 소송에 대한 구두 변론이 열렸다. 정부 측 대리인을 비롯해 소를 제기한 민주당 성향의 12개 주 대표 변호인과 기업인 등이 참석한 이번 변론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트럼프 관세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관료들도 참관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변론하기로 했지만, 이번 주 돌연 불참을 통보했다.
소송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위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발동한 것이 적법한지다. 정부 측은 무역적자가 경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지금이 IEEPA를 발동하기 타당한 시기라고 주장했고 민주당 측은 법안 발동이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고 맞받았다.
변론 시간은 길었지만, 진보 성향의 대법관 세 명은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정부 측 대리인으로 나선 D. 존 사우어 법무차관이 펼치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반박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의회가 IEEPA를 제정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게 아니라 제약하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우리가 잊고 있는 근본적인 부분이 있다”며 “헌법 구조상 세금을 내야 한다면 그건 의회를 통해 발의된 법안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 성향 판사 6명과 진보 성향 판사 3명으로 이뤄져 있어 트럼프 행정부에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날 심리에서 보수 성향 판사 몇몇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비판하며 정부 측 주장에 날카로운 의문을 제기했다고 CNN은 설명했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비상사태에서 해외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사실상 모든 국가의 모든 제품에 대해 기간과 금액을 자유롭게 해서 관세를 부과하는 권한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맞지 않는 해석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국방과 산업 기반에 대한 위협 때문에 모든 나라에 관세를 부과한 것인가”라며 “일부 국가가 아니라 어째서 이렇게 많은 국가에 적용이 되는 것인지 설명해보라”고 정부 측 변호인에게 요구했다.
변론 과정에선 정부 패소 시 징수된 관세를 환급해야 하는 문제도 다뤄졌는데,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정부가 환급 문제를 미루기보다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알리토 대법관은 2005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3시간에 걸친 변론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정부 측 대리인이 대법원 다수로 구성된 보수 성향 대법관 여러 명으로부터 날카롭고 회의적인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프로그램의 주요 요소가 위험에 처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이에 미국 베팅사이트 ‘프레딕트 잇’에서는 변론 시작 후 1시간 만에 트럼프 정권에 불리한 결정이 나올 확률이 60%대에서 시작해 90%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가 미국 경제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관세를 무효로 한다면 우리나라에 치명적일 것이고 전 세계가 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재판은 우리나라 역사상 중요한 재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재판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 위협으로 중국이 희토류 규제를 철회하도록 압박할 수 있었다”며 “이건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가해진 위협이었고 난 전 세계를 위해 이 일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선트 장관은 대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내년 여름쯤 정부 패소로 결정이 나게 되면 7500억 달러에서 최대 1조 달러(약 1450조 원) 규모의 세수가 환급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통 대법원은 관심도가 높은 사건이라도 판결 확정까지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번 관세 소송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르면 수주, 늦어도 수개월 안에 나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트럼프 정부가 최종 패소하게 되면 대법관들이 언급한 대로 환급 문제가 부상할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이 IEEPA 대신 무역확장법 232조나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관세 타당성을 피력하며 버틸 수 있다는 점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공판 전 기자회견에서 “백악관은 언제나 플랜 B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관세를 합의한 국가들의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춘 한국도 마찬가지다.
박기훈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패소 시 IEEPA를 근거로 한 관세는 효력을 잃게 되고 트럼프 행정부의 플랜 B가 IEEPA 수준의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미 징수된 관세 중 일부는 환급이 불가피하다”며 “다만 이미 합의를 마친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과의 협정이 무효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법적 근거 변경에 다른 세부 조항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일시적으로 진정됐던 통상정책 불확실성이 재차 고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호재에 집중하며 상승세를 이어온 주식시장은 이제 감춰져 있던 구조적 변수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며 “향후 판결과 정책 대응 방향에 따라 시장 무게중심이 바뀔 수 있는 만큼 이번 이슈는 단기 대응보다 향후 전략 수립 과정에서 주의 깊게 반영해야 할 이벤트”라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