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로 시작⋯IPO 몸값 10조원 오가
일본·중국 진출해 K패션 브랜드 알린다

영국 패션 전문 매체 ‘더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는 조만호 무신사 대표를 ‘The BoF 500 2025’에 선정하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The BoF 500은 리더십, 창의성, 혁신, 사회적 영향, 성과 등을 기준으로 2013년부터 매년 전 세계 패션계를 움직이는 인물을 선별하는 권위 있는 패션 인물 리스트다.
3일 무신사에 따르면 조 대표는 The BoF 500 2025 명단에 패션 플랫폼 경영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2001년 작은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 개설 이후 약 25년 만에 글로벌 패션 산업에서는 영향력을 확인하는 핵심 지표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 기업가치 10조 원 이상의 데카콘 기업을 노리는 무신사의 시작점은 조 대표가 만든 이 스니커즈 마니아 커뮤니티였다. 조 대표가 2001년 온라인 포털 ‘프리챌’에 개설한 무신사는 패션 마니아들이 한정판 운동화 사진과 거리 패션 등을 공유했을 뿐이다. 입소문을 타고 이용자가 늘자, 2003년 ‘무신사닷컴’으로 독립했다.
무신사닷컴은 국내외 패션 트렌드와 스트리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지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듯 당시 압구정, 홍대 등의 거리 패션을 구경하기 위해 무신사닷컴을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패션업계 관계자들과도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2005년 전문 에디터 등을 영입해 ‘무신사 매거진’을 창간했다.
조 대표는 패션 전문 미디어를 통해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구상했다. 2009년 ‘무신사 스토어’를 오픈했다. ‘브랜드 정품만 판매한다’는 원칙으로 고객에게는 편리한 쇼핑 경험을, 국내 디자이너들에게는 판로를 제공했다. 당시 백화점에 입점하기 어려웠던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무신사에 다수 입점했다. 무신사는 디스이즈네버댓, 커버낫 등 이른바 ‘1세대 스트리트 브랜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조 대표는 국내외 브랜드 유치에 힘썼고, 무신사는 현재 1만여 개 브랜드가 입점한 국내 최대 패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2021년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서 신진 브랜드 육성과 컨설팅에 집중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대표이사로 복귀해 국내 패션 플랫폼 최초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주관사 선정을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 내년 하반기 상장이 점쳐진다. 무신사가 희망하는 기업가치는 10조 원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를 전후로 무신사 등 국내 패션 플랫폼 산업이 태동했다. 이후 △2010년 머스트잇 △2014년 브랜디 △2015년 지그재그, 에이블리, 발란 △2016년 트렌비 등 브랜드, 스트리트, 명품 등 판매자와 소비자를 잇는 플랫폼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차츰 규모를 키우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소비자가 옷을 사는 방법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는 잠시,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외부활동이 재개됐고 오프라인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여기에 고물가 등으로 인한 소비침체로 패션업계 전반이 침체에 접어들었다. 추가 투자유치가 어려워지자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고, 현재 발란과 브랜디는 기업회생절차 절차를 밟고 있다.
반면 무신사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 역시 흑자전환했다. 무신사의 성장세를 두고 업계에서는 조 대표가 지휘한 패션 생태계 확장 및 선택과 집중 전략이 적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무신사는 스니커즈 커뮤니티에서 시작하면서 남성패션 이미지가 강해 여성고객 유입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스트리트 브랜드 위주 카테고리와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특성이 소비자층을 넓히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있었다.
조 대표는 무신사의 한계를 넘기 위해 여러 전략을 펼쳤다. 여성패션·리빙 등 카테고리를 지속 확대했는데, 여성패션 플랫폼에 치이자 ‘인수합병(M&A)’이란 묘수를 썼다. 2021년 8월 스타일쉐어와 자회사인 29CM를 인수하고 같은 해 12월 법인 합병했다. 29CM는 ‘감도 높은 큐레이션’을 콘셉트로 여성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위주로 25~39세 여성 고객이 탄탄하다. 또 여성잡화, 리빙 등 무신사의 취약 카테고리에서 강점이 많다. 2021년 4000억 원대였던 무신사 연결 매출은 M&A를 통해 2022년 7000억 원대로 급증했다.
채널 확대에도 발빠르게 나섰다. 2021년 5월 처음 오프라인 시장으로 진출했다. 자체 브랜드(PB) ‘무신사 스탠다드(무탠다드)’ 전용 매장을 서울 홍대입구에 열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채널이 위축됐기에 더 이례적인 행보였다. 이곳은 1년 만에 연간 방문객 100만 명을 끌어모으며 홍대 상권 핵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후 주요 거점에 점포를 확대, 지난해 무탠다드 전국 방문객 수는 1200만 명 이상이다. 온라인 입점 브랜드를 모은 편집숍 형태의 ‘무신사 스토어’도 2023년부터 늘리고 있다.
패션 마니아였던 조 대표는 국내 패션 생태계를 바꾼 혁신 기업가로 꼽힌다. 최근 무신사는 K패션 인큐베이터를 자처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중시 하는 점은 K패션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지원 체계를 고도화하고 산업 전반의 저변을 확장하는 것이다.
2022년 오픈한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는 일본, 미국, 호주 등 13개 지역에서 운영 중이며 3000여 개 K패션 브랜드를 해외 고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글로벌 풀필먼트 서비스와 물류·마케팅 지원 체계를 구축,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체계적으로 돕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2025년 3분기 기준 거래액과 회원 수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조 대표는 일본 내 K패션 브랜드 총판 사업을 전개하면서 6일 일본 대표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조조타운’에 ‘무신사 숍’을 정식 오픈, 파트너 브랜드의 진출을 본격 지원할 예정이다.
조 대표는 중국 시장에도 의욕적이다. 최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에 무신사 스토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 연내 상하이에 오프라인 매장을 선보여 글로벌 유통망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달 27일 티몰 무신사 및 무신사 스탠다드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입점 브랜드의 상품을 착용한 성훈의 룩북을 공개하고 구매 고객에 한정판 사은품을 제공하는 특별 기획전이 진행됐다.
이 기획전은 현지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한 시간 만에 거래액 5억 원을 돌파했다. 하루 동안 판매된 상품 수는 누적으로 7300개를 넘어섰다. 무신사가 중국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 수요를 면밀히 파악해 현지 M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와 스타일을 큐레이션한 결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