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휘은의 AI이야기] 농담의 얼굴을 한 혐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조롱해야 안심한다

▲반휘은 칼럼니스트/ AI컨설턴트. (출처=본인 제공)
언어는 언제나 공동체를 잇는 다리이자, 누군가를 배제하는 담장으로 작동해 왔다. 서로를 알아보는 암호이자, 타자를 지목하는 휘슬. 최근 미국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클랭커(Clanker)’ 밈은 이 언어의 양면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원래는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로봇 병사들을 비하하는 말이었지만, 2020년대 중반 들어 이 단어는 인공지능을 향한 조롱의 언어로 부활했다.

AI가 빠르게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오면서,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까지 번졌다. 인간이 해오던 노동이 위협받고, 예술의 의미가 흔들리며, 관계의 구조조차 재편되는 모습 속에서 기술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반발도 강렬하다.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는 그들만의 유머 코드 속에서 ‘클랭커’라는 단어로 혼란의 감정을 구체화하고 있다.

‘클랭커’ 밈 영상은 보통 2050년 언저리의 근미래로 설정된다. 노년이 된 현재 Z세대 부모가 자녀가 데려온 AI 로봇 배우자를 마주한다. 부모는 “너희 기름칠하는 고철 따위가 우리 집에 들어오냐” “클랭커! 너희 족속은 우리와 함께 앉을 수 없다”고 고함친다. 폭력적 장면이든 희화화된 분노든 강렬한 자극으로 끝맺는 영상은 웃음의 틀 안에 담긴 분노다. 이 장면들은 얼핏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배제의 언어가 숨어 있다. 이는 “꼴 좋다. 더러운 클랭커” “기름 돼지들을 지금부터 다스려야 한다” 등과 같은 수백개의 동조의 댓글로 더욱 힘을 얻는다.

한 사회 집단이 또 다른 집단을 공공의 적으로 설정해 결속을 다지는 일은 인류의 오래된 전통이다. 경제가 불안하고 정치가 양극화될수록,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선은 더욱 굵어진다. 디지털 공간은 그 선을 강화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며, 밈은 그 감정에 유희의 옷을 입힌다. 그리고 그 유희는 종종 혐오를 모방하면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소비된다. 밈의 본질이 아이러니라면, 이 현상은 그 아이러니의 정점에 있다. 젊은 세대는 이 영상을 ‘풍자’라 부르며 웃지만, 그 웃음은 기묘하게 낯설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을 향해, 인간이 한때 인간에게 휘둘렀던 혐오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인류가 자신이 만든 거울 속에서 다시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의미가 단어에 고정된 채 존재하지 않고,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진다고 말했다. ‘클랭커’ 역시 그런 단어다. AI와 로봇과 같이 비교적 중립적이던 표현에서 더 나아가 모욕적 뉘앙스를 가진 새로운 기호가 등장했다는 것은, 사회가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경쟁자이자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클랭커’라는 단어의 부활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해당 용어가 새로운 언어가 아닌 이미 존재하던 허구의 세계에서 가져온 단어라는 점이다. <스타워즈>의 설정 속에서 클랭커는 인간의 통제를 받는 금속병사들을 경멸하던 말이었지만, 현실에서는 AI를 향해 사용되고 있다. 기술의 발달이 공상 과학의 문법을 닮아가고, 현실의 사회가 그 허구의 언어로 기술을 비판하고 있는 흥미로운 지점인 것이다. 단순한 패러디가 아닌 기술과 그의 영향에 대한 저항이 허구의 언어를 통해 실현되는 방식이다.

미디어 속 지성 로봇에 대한 멸칭은 <스타워즈> 외에도 존재한다.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토스터(toaster)’, <블레이드 러너>의 ‘스킨잡(skinjob)’이 그 예다. 다만 ‘클랭커’가 실제 AI를 대표하는 단어로 발탁된 이유는 해당 단어가 인종차별적 언어의 문법을 거의 그대로 복제했다는 편의성에 있다. 클랭커 트렌드의 영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던 “We don’t serve clankers here (클랭커는 우리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 같은 대사는 1950년대 미국 식당 벽에 붙어 있던 “Whites Only (백인만 환영)” 표지판을 그대로 차용한다. 실제로 클랭커 밈의 많은 영상들은 아직 실재하는 차별의 문법을 답습한다. 몇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인기 영상에서는 당시의 복장과 말투, 억양까지 모방하며 유색인종 차별의 언어와 사회적 신호를 다수 포함했다. 웃음의 대상은 로봇이지만, 웃음의 문법은 여전히 인간의 차별을 닮아 있었다.

이 지점에서 ‘클랭커’ 밈은 단순한 농담이 아닌 사회적 구조의 복제물로 읽힌다. 산업혁명 중 기계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처럼 기술은 언제나 노동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상징이 되어왔다. 방직공들이 기계를 부쉈던 이유는 기계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젊은 세대들이 AI를 조롱하는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기계가 노동, 즉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와 의의를 증명하는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아이러니한 밈이라는 안전한 형태로 배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언어는 단지 기술에 대한 불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정의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인간이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언제나 ‘타자’였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무생명, 감정과 알고리즘 같은 구분선은 그래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AI를 비난하면서 인간은 동시에 자기 존재의 근거를 재확인한다. ‘나는 저것과 다르다’는 선언을 통해서만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AI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위계와 배제의 욕망을 드러내는 징후다. ‘인간 vs 비인간’, ‘살아있는 존재 vs 만들어진 존재’라는 이분법은 결국 ‘남성 vs 여성’, ‘시민 vs 이민자’의 오래된 위계를 닮아 있다. 실제 클랭커 밈의 유행 중 기존 차별적 언어와 지나치게 흡사한 용어를 구사한 유저들에게 상당한 비판 또한 뒤따랐다. 한 유저는 그러한 영상들이 “AI를 핑계로 현대 사회에서 이전처럼 표출하기 어려운 인종차별적인 사상을 드러내는 핑계로 전락한 느낌”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그렇다고 해서 ‘클랭커’를 사용하는 모든 이들이 악의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밈은 본래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는 집단적 유머의 장치이기도 하다. 현재 젊은 세대는 AI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농담으로 삼는다. 기계와 결혼하는 미래를 그리는 그들의 상상은 미래의 불안을 유머로 승화시키려는 자조적 몸짓이다. 그러나 그 웃음이 오래된 차별의 언어를 답습하려는 양상을 띨 때 새로운 폭력의 형태가 될 위험이 생기는 것이다.

이 단어가 유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AI가 점점 더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고, 인간의 얼굴로 웃으며, 인간의 예술을 대체하려 할 때, 사람들은 그와 자신 사이의 경계를 다시 긋고 싶어한다. ‘클랭커’는 그 경계의 이름이자 불안의 방언이다. 단순한 온라인 세계의 농담조의 유행어가 아닌 사회의 감정 구조를 드러내는 징후에 가깝다. 빠른 기술의 발전과 그에 맞게 변화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사람은 늘 자신의 역치를 실험한다. 현재 그 실험의 언어와 사회 규범의 대상이 ‘클랭커’인 것이다.

결국 ‘클랭커’ 밈은 우리 시대의 불안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기술에 대한 공포, 인간성에 대한 집착, 타자를 향한 조롱이 하나의 언어로 응결되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언어로 세상을 구분하며 그 구분 속에서 안심을 얻고 현실을 스케치하고 있다. ‘클랭커’라는 말이 단순한 유행어로 남을지, 또 다른 ‘Whites Only’의 표지판으로 남을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AI를 향한 농담 속에는 결국 인간의 타자성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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