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하도급에 재하도급 '예견된 인재'⋯"정부 피해액 최소 95억" [국정자원 화재 한달]

배터리 이설 과정서 불법 재하도급⋯무경험 작업자 현장 투입
정부 부처 7곳 피해액 95억 추산⋯확인 안 된 부처도 수두룩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감식 관계자들이 4일차 현장 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전산망이 먹통된 지 한 달이 지난 가운데 정부 부처 피해액이 최소 9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배터리 이설 과정에서 불법 하도급 정황이 포착되는 등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제기된 만큼, 경찰은 사고 원인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대전경찰청 수사전담팀은 불법 하도급 혐의로 공사 관련 업체 5곳을 수사 중이다. 앞서 경찰은 업무상 실화 혐의로 국정자원 담당자, 감리·공사업체 직원 등 5명을 입건했는데, 화재 수사와 별도로 불법 하도급이 이뤄진 정황을 포착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전기공사업법상 전기공사 수주업체가 하도급을 주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화재 피해를 입은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 무정전·전원장치(UPS) 이전 작업은 수주업체가 아닌 제3의 업체가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도급을 받은 제3의 업체는 또다시 2개 업체에 재하도급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에 투입된 5개 업체 모두 UPS 이설 경험이 없었으며, 리튬배터리 분리 작업 시 필수인 절연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충전율 80~90%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이전 작업을 하려면 배터리 충전율을 30% 아래로 낮춰야 한다. 경찰은 이들이 소홀하게 작업하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전산망 마비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29일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에서 직원들이 민원실 입구에 주민등록 등·초본과 인감증명서의 수수료 면제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그동안 안전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정자원은 지난해 5월 화재안전조사 당시 보안을 이유로 2층~5층의 전산실 점검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1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자원 현안질의에서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에게 "화재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 원장이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자, 채 의원은 "지난해 4월 감사원 감사에서도 국정자원이 화재 대비에 취약하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또 2023년 11월 발생한 행정 전산망 먹통사태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전산망 이중화'를 공언했지만, 정작 관련 예산이 삭감되는 등 대비가 미흡했다며 질타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불법 재하도급으로 경험 없는 작업자들이 현장에 투입됐고, 화재 대비에 취약하다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등 문제가 맞물려 발생한 '예견된 인재'라는 분석이다.

화재 복구가 더뎌지면서 정부 각 부처의 재정적 손실도 커지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 부처 7곳(교육부·국무조정실·문화체육관광부·소방청·국가데이터처·우정사업본부·원자력안전위원회)의 54개 시스템 피해액만 95억4500만 원으로 집계됐다.

가장 피해 규모가 큰 곳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로, 우편정보 검색·우표포털 등 34개 시스템에서 79억 66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전체 피해액의 84%를 차지한다.

차 의원은 "현재까지 확인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화재 피해추산액은 약 100억 원이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처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더 클 것"이라며 "정부는 복구와 화재 피해 예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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