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요금이 비싼 한낮을 피해 전력 사용량이 적은 새벽이나 야간에 업무를 몰아서 합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철강사 임원이 이같이 토로했다. 업황이 어려워도 설비를 멈추면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공장을 계속 돌릴 수밖에 없는데, 전기요금이 부담돼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현재로썬 최선의 대응책이라는 얘기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난 3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70% 넘게 올랐다. 반면 가정용 요금은 10분기 연속 동결됐다. 한전의 재무 부담을 낮추면서도 물가 안정까지 잡겠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산업 현장에만 고통이 전가됐다. 특히 철강·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은 글로벌 공급 과잉까지 겹치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 정유·석유화학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가장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를 맨 먼저 꺼냈다. 그러나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답은 바뀌지 않았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2026~2030년) 할당 계획도 기업들의 부담을 키운다. 특히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이 대폭 확대될 경우 발전사들의 배출권 구매 비용이 전기요금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신동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게 의뢰한 ‘배출권거래제의 전기요금 인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유상할당 비중이 50%로 높아지고, 배출권 가격이 t당 3만 원일 때 화학 산업은 연간 4160억 원, 철강(1차금속)은 3094억 원의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한 해 영업이익이 탄소 감축 비용으로 통째로 날아갈 판”이라고 우려한다.
국회에 발의된 석유화학·철강 등의 산업 지원 특별법은 정쟁에 밀려 진척이 없고, 정부는 ‘탄소 감축’을 외치면서도 친환경 전환에 대한 뚜렷한 인센티브 없이 산업 재편만 주문하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와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 등 외부 악재도 국내 제조업을 압박하고 있다. 산업 경쟁력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표심보다는 국가 경제의 생존을 위한 결정이 내려져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