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EC 유치되고 나서요? 장사요? 완전 달라졌죠."
21일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경주 황리단길. 분주히 손님을 맞으며 커피를 내리던 한 카페 주인은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손님들이 붐비고 꽉 찬다"며 "이렇게 붐빈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덧붙였다.
이날 황리단길에는 화요일 오전인데도 거리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젊은 커플들은 연신 카페를 오가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셀카봉을 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주가 들썩이고 있다. 천년고도의 전통과 세계 정상회의가 만나는 이번 행사를 앞두고 관광업계를 비롯한 지역 상권이 활기를 되찾고 있는 단적인 모습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해 APEC 2025 정상회의를 경주에 유치하면서 "정상은 잠자러 오는 게 아니라 도시를 체험하러 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천년고도의 문화도시가 세계인의 '핫플'로 전례 없는 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실제 경주는 'APEC 특수'를 실감 중이다. 황리단길, 보문단지, 동궁과 월지 등 도심 주요 거점은 평일 낮에도 관광객들로 붐비고, 주요 식당은 '재료 소진' 안내문을 내걸었다. 경북도와 경주시에 따르면 황리단길 일대 상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이상 증가했다.
이날 보문단지 앞에서 만난 거제도에서 왔다는 김찬경-서민화 씨 부부는 "다음주에는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만큼 복잡할 것 같아 그 전에 경주를 찾았다"며 "경주에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 몰랐다.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전체적으로 활기차고 북적거려서 생동감이 있는 느낌이다. 다만 APEC 특수 때문에 그런지 숙박비용이 너무 올라서 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행사 준비로 유입되는 인력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의 재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이 도지사가 강조한 '살아있는 국제행사' 구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황리단길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기념품점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식당 앞에는 예약 손님을 기다리는 번호표가 놓였다. 한 상인은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 장사만 됐는데, 요즘은 평일 저녁에도 손님이 몰린다"며 "이게 바로 진짜 특수 아니겠나"고 말했다.
보문단지 숙박시설은 예약률 90%를 넘겼다. 경주시 등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3∼9일 보문단지 내 주요 호텔 5곳과 리조트 4곳의 평균 객실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보문단지의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9월 말부터 예약이 몰려 11월 객실은 이미 만실 상태"라며 "행사 기간뿐 아니라 전후로도 단체 관광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리조트업계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한 리조트 총지배인은 "APEC 이후에도 외국인 관광객 예약 문의가 이어지고 있어 오랜만에 활기를 느낀다"고 전했다.

첨성대 미디어아트, 야간 경관조명 등 도시 전역이 축제의 장의로 꾸며졌다.
중앙시장 상인 김정희(62)씨는 “코로나 이후 한산하던 시장이 요즘은 평일에도 붐빈다"며 “이 기회에 경주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뉴스에서만 보던 행사가 내 삶을 바꾸는 게 신기하다"며 "경주가 다시 살아나는 걸 눈으로 본다"고 했다.
경북도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교통 셔틀, 환승 안내, 경관 정비 등 도시 전반을 손질했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변화의 주체’로 나선 것이 눈에 띈다.
경북도 관계자는 “APEC 유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며 “단기적 경제효과를 넘어, 경주의 도시 정체성과 자생력을 키우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업계 반응도 뜨겁다. 하나투어 인바운드 담당자는 "APEC 유치 이후 외국인 여행객 문의가 급증했다"며 "이번 APEC은 도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꾼 사례"라고 평가했다.
APEC을 앞둔 경주는 지금, ‘잠자는 도시’에서 ‘체험의 도시’로 변모 중이다.
한 카페 주인의 말이 그 변화를 가장 잘 설명한다. "손님이 많아서 힘들지만, 좋습니다. 이번엔 진짜 경주가 살아난다는 게 느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