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매매양태, 시세조종 단정 못 해"…김범수 무죄 근거는

"시세조종 목적 없고 시세조종성 주문과 차이"
공모 증거도 신빙성 부족…이준호 진술 배척
김범수 "주가조작 그림자 벗는 계기 되길"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공모 의혹을 받는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1일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법원을 떠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SM엔터테인먼트(SM)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공개매수 과정에서의 대규모 장내 매수를 시세조종으로 단정할 수 없고, 김 창업자에게 시세를 조종할 목적과 공모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양환승 부장판사)는 21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창업자와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 홍은택 전 카카오 대표, 강호중 전 카카오 투자전략실장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된 주식회사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원아시아파트너스 지창배 대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 창업자 등은 2023년 2월 SM 인수 과정에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주가를 공개매수가(12만 원)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들이 장내에서 수백 차례의 고가 매수·물량 소진·종가 관리 주문을 통해 주가를 '고정'하고, 원아시아에 SM 굿즈(제작상품) 사업권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공모했으며, SM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도 대량보유 보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시세조종의 성립 기준부터 짚었다. 재판부는 "정상적 가격 형성 과정에 인위적 조작을 가할 목적을 갖고 일련의 매매로 시세를 왜곡해야 시세조종으로 인정된다"며 "단순히 주가에 영향이 있었다는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규모 장내 매수가 곧바로 시세조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장내 매수는 통상 경쟁 방어 목적의 수단으로 허용돼 왔고, 시기와 방법에 따라 시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 시세조종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거래 동기, 경제적 합리성, 인위적 조작 여부 등 간접사실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목적·매매 양태 종합해도 시세조종 단정 못 해"…법원, 공소 논리 일축

재판부는 이 같은 법리를 본건에 적용한 결과, 김 창업자 등에게 시세를 조종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시세조종 혐의 근거로 카카오가 SM 경영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고 주장하지만, 관련 증거만으로 그런 필요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카카오가 SM 인수를 검토했던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를 반드시 인수해야 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당시 시장 상황 역시 검찰 논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공개매수 마감일(2023년 2월 28일)에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 원 근처로 수렴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보고, 카카오가 주가를 12만 원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장내에서 대량 매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시장에서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했고 주가 상승 전망도 많았던 만큼, 검찰이 전제한 시장 흐름과 달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개매수 응모 절차의 번거로움과 세 부담 등을 고려하면 12만 원 이상 구간에서 매도하지 않았던 투자자들이 마감일에 대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며 공개매수 마감일에 주가가 하락할 것이 예견됐다고 보기 어렵고, 카카오가 시세를 조종해 공개매수를 저지할 유인이 있었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검찰이 김 창업자의 시세조종 지시 정황으로 제시한 '브라이언(김범수)이 평화적으로 가져오라'는 통화 내용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다른 해석 가능성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배재현과 강호중의 통화에서 해당 표현이 나왔다는 점을 근거로 은밀한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투자 테이블 참여자 중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얘기하지 않았다"며 "김 창업자가 SM 인수에 소극적이었고 장내 매수에도 반대했던 정황을 종합하면, 이 발언은 하이브와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정리하라는 취지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카카오의 SM 주식 매매 양태가 시세조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매수 비율, 간격, 물량 주문 모두 살펴봐도 매매 양태가 시세조종성 주문에 해당한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시세조종의 목적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 당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카카오-원아시아 공모, 핵심 증거 신빙성 부족…이준호 스피커폰 진술 배척

카카오가 원아시아와 공모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핵심 증거로 제시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 진술은) 검찰이 제출한 사실상 유일한 증거"이라며 "시세조종 논의가 스피커폰 통화로 이뤄지는 걸 들었다는 진술은 대화 내용, 성격으로 볼 때 이례적이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이 전 부문장은 자신이 스마트폰을 스피커폰 모드로 전환해 배 전 투자총괄과 지 대표의 통화를 연결해 줘 약 27분가량 통화가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통화에서 카카오와 원아시아 간 공모가 이뤄졌다고 주장해 왔다.

또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이 별건 수사와 배우자 수사로 압박받는 상황에서 진술을 번복한 점을 지적하며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동기나 이유가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상식에 반하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며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재판부는 김 창업자와 카카오 측의 시세조종 목적 및 공모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시세조종 성립을 전제로 기소된 보고의무 위반 부분도 그 전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함께 무죄 결론에 이르렀다.

반면 지 대표의 특경법상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지위와 피해 규모 등에 비춰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손해 회복이 이뤄졌으며, 동종 전력도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선고 직후 김 창업자는 법정을 나서며 "오랜 시간 꼼꼼히 지켜봐 주고, 이같은 결론에 이르게 해준 재판부에 감사한다"며 "카카오에 드리워진 주가조작·시세조종의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벗을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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