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언대용신탁'이 노후 불안과 가족 간 갈등을 동시에 줄이는 대안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언의 불확실성과 상속 분쟁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고령층 등에 큰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정부도 신탁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 만큼 갈수록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4조1237억으로 집계됐다. 2022년 말 2조541억 원이었던 규모는 4조 원대에 처음 진입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은행 등 금융기관과 신탁계약으로 재산을 맡겨 생전에는 수익을 활용하고 사후엔 유언대로 재산이 이전되는 방식이다. 유언장은 당사자가 혼자 작성한 뒤 사망하면 그 이후에 효력이 발생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실질적인 승계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신탁자와 수탁자 간 계약이 체결되면 상속이 일어나기 전에도 효력이 생긴다.
최근에는 60대 이상 고령층, 무자녀 1인 가구, 치매 등 질환을 걱정하거나 상속 분쟁을 대비하는 사람들의 가입이 늘어난다고 한다. 애초 시중은행들은 2010년 초반 당시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유언대용신탁을 운용했다가, 이제는 가입 금액을 대폭 낮추는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상품을 변화시키고 있다.
실제 상속재산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 상속재산은 2020년 21조4779억 원에서 2022년 62조 원대로 급증했다. 지난해도 상속재산은 44조5169억 원으로 높은 수준인데, 상속세 납부가 확정된 인원도 2만1193명으로 2020년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이는 상속재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상속재산 분할에 대한 사건도 늘었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18년 1710건이었던 상속재산 분할 청구 접수는 2020년 2000건(2095건)을 돌파한 뒤 꾸준히 증가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3075건을 기록했다. 특히 소송 규모가 1억 원 이하인 사건이 전체의 83%에 달했다.
법조계에서는 향후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광득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유언과 비교해 신탁을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과거보다 신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민간 신탁 시장 활성화와 공공 신탁 도입 등 '투트랙' 방침을 정했다. 공공 신탁 제도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로, 민간 신탁을 이용하기 어려운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민간 신탁의 경우 제도 개선과 활성화 방안 등을 올해 안에 마련할 예정이다.
앞서 은행연합회는 6월 금전·증권·부동산 등 7가지로 한정된 신탁가능재산의 범위를 확대하고, 신탁업자가 아닌 법무법인 등 분야별 전문기관에 신탁 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 특례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정기획위원회에 전달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비슷한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경우 해마다 유언대용신탁 집행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일본신탁협회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유언대용신탁 집행 건수는 19만295건으로 집계됐다. 일본 정부는 상속·증여가 신탁을 통해 활성화되도록 선제적으로 제도를 재편하고, 금융기관과 협력해 신탁상품의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한다.
부 변호사는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신탁을 하더라도 세금 혜택이 없다"며 "부동산 신탁도 계약의 내용이 외부에 공개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등 사람들이 신탁에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