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 주도 ‘불균형 랠리’…상승장 속 하락 종목 3배

코스피가 장중 3800선 턱밑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대형주의 폭등세가 지수를 끌어올리며 시가총액은 3000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수의 고공행진 이면에서는 ‘하락 베팅’ 자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공매도와 대차거래 잔액이 동시에 급증하며 과열신호 경고등이 켜졌다. 시장 불안을 반영하는 공포지수(VKOSPI)마저 4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상승장과 불안심리가 공존하는 ‘뜨거운 불장’이 된 셈이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5일 기준 코스피 공매도 순보유 잔액은 12조263억 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 달 새 5000억 원 넘게 불었고, 3월 전면 재개 당시(3조9155억 원)와 비교하면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들어 공매도 잔액은 △6월 6조8000억 원 △7월 8조6000억 원 △8월 9조8000억 원을 거쳐 10월 들어 12조 원을 돌파했다. 불과 넉 달 만에 두 배 가까이 폭증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상승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며 시장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달 들어 공매도 거래대금은 연일 1조 원대를 유지하며 증가세다.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 연속 1조 원을 넘겼으며, △14일 1조1321억 원 △15일 7621억 원 △16일 1조1200억 원 △17일 1조483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초 2일(1조1321억 원)과 10일(1조2879억 원) 역시 1조 원대를 기록했다. 연휴 직전 일평균 거래대금(6176억 원)의 두 배 수준으로, 지수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과 단기 조정에 대비한 헤지(위험회피) 수요가 동시에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공매도는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 먼저 팔고, 이후 주가가 하락했을 때 낮은 가격에 되사서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따라서 잔액이 늘어난다는 것은 향후 주가 하락에 대한 경계심, 즉 시장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공매도 급증이 ‘하락 베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상승 피로가 누적된 시장이 외부 변수에 민감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다. 실제 코스피의 10월(1~17일) 일평균 일중 변동률은 1.81%로, 2021년 2월(2.03%) 이후 4년 8개월 만의 최고치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통하는 ‘코스피200 VKOSPI’도 17일 기준 전일 대비 15.69% 급등한 34.58을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언으로 글로벌 증시가 출렁였던 4월(37.83) 이후 최고치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변동성이 큰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매도의 실탄으로 불리는 대차거래 잔액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7일 기준 대차거래 잔액은 114조5039억 원으로 집계됐다. 사흘 전(14일 105조9847억 원)보다 약 8조 원, 한 달 전(9월 16일 105조3140억 원)보다 9조 원 넘게 급증했다.
대차거래 잔액은 외국인이나 기관이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를 목적으로 주식을 빌린 뒤 아직 갚지 않은 물량이다. 통상 잔액의 70% 이상이 실제 공매도로 이어진다. 잔액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세력이 많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대차거래 잔액 증가 속도는 특히 가팔랐다. 6월 초 81조 원대였던 대차잔액은 불과 4개월 만에 41% 늘었다. 올해 1월 2일(47조3385억 원)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1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냉정하다. 지수가 오를수록 매수세는 줄고 차익 실현과 현금화 움직임이 뚜렷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가 아무리 올라봐야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개인은 떠날 준비부터 한다”며 “공매도 제도 불신과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국내 시장에 대한 체념이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코스피 상승이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일부 대형주 쏠림에 따른 ‘왜곡된 랠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반도체와 2차전지 중심의 대형주 수급 쏠림이 지수를 끌어올렸지만, 상승 종목(222개)보다 하락 종목(672개)이 세 배 이상 많았다”며 “시장 전반의 체력보다는 대형주의 왜곡된 수급이 만들어낸 상승”이라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