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증여 3.8조에도 실효세율 18% 그쳐…세대생략 증여,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미성년 증여 절반이 조부모→손주 직접 이전…초등학교 졸업 전 66%
평균 증여액 1.4억, 일반보다 50% 많아…“세대생략 할증제도 보완 필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제공=최기상 의원실)

조부모가 손주에게 직접 재산을 물려주는 ‘세대생략 증여’가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5년간 조부모가 손주에게 건너뛰어 증여한 금액이 3조8300억 원에 달했으며, 미성년자 전체 증여의 절반 가까이가 이 같은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졸업 전 증여가 3분의 2를 넘었고, 건당 평균 증여액도 일반 증여보다 50% 높았다. 하지만 실효세율은 18% 수준에 그쳐, 제도적 제동 장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증여는 7만8813건, 증여가액은 8조2775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조부모가 손주에게 직접 증여한 세대생략 증여는 2만8084건(35.6%), 금액으로는 3조8300억 원(46.3%)이었다. 미성년자가 받은 증여 재산의 절반 가까이가 부모를 건너뛴 ‘조부모→손주 직행’ 형태로 이뤄진 셈이다.

세대생략 증여의 규모도 일반 증여보다 컸다. 1건당 평균 증여액은 1억4000만 원으로, 일반 증여의 0.9억 원보다 약 1.5배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취학 전 아동(0~6세)에게 1조2225억 원(31.9%), 초등학생(7~12세)에게 1조3049억 원(34.1%)이 증여돼 전체 세대생략 증여의 66%가 초등학교 졸업 이전에 집중됐다.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어린 손주들이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물려받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미성년자 세대생략 증여세 현황 (자료제공=최기상 의원실)

조부모가 손주에게 직접 증여하는 방식이 늘어나는 이유는 세금을 한 번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하고 자녀가 다시 손주에게 증여하면 두 차례 증여세를 내야 하지만, 조부모가 손주에게 바로 증여하면 한 번만 과세된다. 같은 재산이라도 세대를 건너뛰면 세금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구조다. 이 때문에 자산 규모가 큰 조부모 세대가 “세금을 절약하려면 손주에게 바로 물려주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런 조기 증여를 막기 위해 세대를 건너뛴 증여에는 일반 증여보다 30% 높은 세율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미성년자에게 2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증여할 경우에는 할증률을 40%까지 높여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세 부담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미성년 세대생략 증여의 평균 실효세율은 18.6%로, 미성년 일반 증여(15.2%)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증여 구조의 특성 때문이다. 여러 명의 손주에게 재산을 나눠 증여하거나, 증여금액을 20억 원 이하로 쪼개면 추가 할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최소화할 여지가 존재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려는 취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세대생략 증여 규모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평균 세율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

최 의원은 “부의 대물림과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세대생략 증여에 할증을 적용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낮다”며 “심화되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세대생략 증여세 제도 전반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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