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물량을 대폭 늘리며 속도전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마찰음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절차 단축보다 대규모 이주 수요를 흡수할 대책이 뒷받침돼야 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30일 관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고양·성남·부천·안양·군포 등 1기 신도시 5개 지자체와 협의체를 열고 내년도 1기 신도시 정비구역 지정 물량 상한을 기존 최대 2만6000가구에서 6만9600가구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정비구역 지정 상한을 △고양 일산 2만4800가구 △성남 분당 1만2000가구 △부천 중동 2만2200가구 △안양 평촌 7200가구 △군포 산본 3400가구로 설정했다.
이번 조치로 기존 계획된 연차별 물량을 초과하더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 구역 지정이 가능해졌다. 다만 분당은 여기서 예외로 묶였다. 다른 지역은 상한을 넘는 지정이 가능하지만 분당은 설정된 1만2000가구 한도를 넘길 수 없다. 이월 불가 원칙까지 더해져 연내에 상한을 채우지 못하면 물량은 그대로 사라진다.
성남시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지역에 이월 불가 원칙이 똑같이 적용되지만 분당은 다른 곳과 달리 상한을 초과 지정할 수 없어 체감 제약이 더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분당이 내년 1만2000가구 목표 가운데 1만 가구만 지정할 경우, 지정된 구역은 유지되더라도 남은 2000가구는 내년으로 이월되지 않고 자동으로 소멸된다. 일산이나 중동은 초과 지정으로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정부가 분당을 예외로 둔 이유는 이주 수요 폭발 가능성 때문이다. 분당은 대단지·고밀 단지가 몰려 있어 재건축이 본격화될 경우 수만 가구가 동시에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고 학교와 교통 같은 생활 인프라에 과부하가 걸릴 우려가 크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현재 분당 신도시의 이주 대책은 난항을 겪고 있다. 국토부와 성남시는 대규모 이주 수요에 대비해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대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분당구 야탑동에 1500가구 규모 공공분양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 방안은 인근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개발제한구역 가운데 보전 가치가 낮은 지역을 해제해 이주단지를 조성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국토부는 “입주가 필요한 2029년까지 공급이 어렵다”며 거절했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정비사업 성공을 위해서는 결국 속도보다 정비의 설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주민제안 방식 역시 공모 절차를 줄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이주 대책 등 마스터플랜 없이 난립할 경우 구역 간 속도 격차와 갈등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합정비는 규모의 경제와 토지이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단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이를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면 사업 지연과 사업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1기 신도시는 규모가 큰 만큼 어느 한 단지라도 발목이 잡히면 전체 일정이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