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휘은의 AI이야기] 밈과 총성, 그리고 AI

AI 알고리즘이 어떻게 대안 우파의 새로운 무기가 되었는가

▲반휘은 칼럼니스트/ AI컨설턴트. (출처=본인 제공)
“1964년 민권법은 역사상 최악의 실수였다.” “동성애자는 돌로 맞아 죽어야 한다.” “영국의 식민주의는 세상을 구원했다.” “유색인종 파일럿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다.” “유색인종 정치인들은 백인의 자리를 훔친 도둑들이다.” “표백제를 마시면 코로나를 완치할 수 있다.” “여자는 남편의 소유물이다.”(13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매년 학교 총기 사고로 사망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총기 허용을 위해 마땅히 치뤄야 할 값이 있다.”(성폭행 피해자의 낙태 합법화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나는 내 10살짜리 딸이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어도 낙태는 절대 못 하게 할 것이다.”

발언의 주인공은 지난 9월 10일 유타주의 한 캠퍼스에서 공개토론 행사 중 피살당한 미국 유명 정치논객 찰리 커크다. 약 375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던 그는 정치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 젊은 세대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던 대표적인 우파 인사였다. 커크는 팟캐스트, 인터뷰, 대학 캠퍼스 및 상대 진영과의 공개토론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팬층은 물론이고 트럼프의 공화당을 지지하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젊은 세력을 확보한 핵심 인물이다. 커크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했다. 더 ‘깨끗한’ 미국. 백인 남성 중심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젊은 개신교 남성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깨끗함(clean/pure)’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닌 인종적, 종교적 순혈주의를 암시하는 도그 휘슬이었다. 양극화된 정치사회적 분위기에서 분열하던 젊은 세대는 커크에게 열광하거나 증오했다. 어느 진영이건 커크의 사상과 그의 발언의 무게는 점차 주류 미디어로 옮겨갔다.

물론 커크의 영향력은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됐다.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캠퍼스와 방송사에 찾아가 토론을 했지만, 그의 발언은 언제나 유튜브에 편집되어 올라왔고, 다시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로 쪼개져 전파됐다. 30초짜리 영상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커크는 편집의 특성을 활용해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내용들을 조정했고, 그에 맞선 학생들과 논객들은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집단 공격을 받았다. 마셜 매클루언이 말했듯 “미디어는 메시지”였다. 메시지의 진위보다 자극적이고 편리한 포맷과 전달 방식이 정치적 열광을 만들어냈다. 커크의 영향력은 그의 존재감 자체로도 있었지만, 커크를 모르는 ‘현실’의 사람들에게도 그의 발언이 녹아들어있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디지털 공간의 목소리가 새롭게 포장되어 현실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미국 공화당은 그런 커크의 ‘순교’가 정치적인 테러행위라고 정의했고, 그러한 극악무도한 행위를 벌인 것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진보’ 진영의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살 사건이 일어난 유타주의 주지사는 용의자가 미국인이 아닌 이민자이길 바란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커크의 피살 소식 직후 진보진영의 폭력성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내 추적 끝에 붙잡힌 범인은 이민자도, 유색인종도, 진보진영도 아닌 20대의 백인 남성, 미국인 타일러 로빈슨이었다.

보수적 성향의 가정에서 나고 자란 로빈슨은 인터넷 문화에 능숙한 젠지(Generation Z)였다. 그의 신원과 함께 공개된 디스코드 대화와 탄피에 새긴 문구들은 모두 인터넷 활동량이 높아야 알 수 있는 밈투성이였다. 국내 언론은 로빈슨을 보수 가정에 환멸을 느낀 청년 또는 성 정체성을 깨달은 진보로 서둘러 낙인찍었다. 국내의 유명 미국 정치 전문가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는 문화적 맥락과 세대의 단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제한된 정보 내에서 이루어진 개인적 차원의 추론일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커크의 죽음이 드러낸 정치적 균열의 본질을 국내 전문가들은 간과하고 있다.

많은 정황상 로빈슨은 ‘신극우’ 세력인 ‘그로이퍼스(Groypers)’로 보이는 것이 현지의 해석이다. 백인 우월주의를 기반으로 한 개신교-미국 우선주의를 호소하는 그로이퍼스는 미국 내 젊은 백인 개신교 청년 위주로 형성된 디지털 기반 집단이다. 그들은 트럼프와 커크를 비롯한 공화당조차 중도적이라고 비판하며 반-이스라엘, 반-유대인주의를 강력히 지향하며 커크와 충돌했다(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유색인종이자 이슬람교 기반인 팔레스타인의 독립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지워야 한다’고 외친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와 디스코드,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에서 활동하는 그로이퍼스들은 찰리 커크, 조던 피터슨, 캔디스 오웬 등 극우 논객과, 이들과 토론을 벌이는 진보 진영 논객들의 영상을 주로 시청했다. 또 커크를 비롯한 보수 논객들이 현장으로 나가 면대면 토론이라는 콘텐츠를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산’하는 전략을 취했다면, 그로이퍼스들은 철저히 온라인 중심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퍼뜨렸다. 여기에는 AI의 설계가 뒷받침 됐다.

사실 그로이퍼스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돌연변이가 아니다. 필자는 그로이퍼스와 같은 온라인 알고리즘 기반의 극우세력의 탄생을 2014년 ‘게이머게이트(Gamer Gate)’를 목격하며 예견했다. 한 남성이 전 여자친구인 게임 개발자 조이 퀸을 모욕하기 위해 “평론가와 잠자리를 하고 평점을 청탁했다”는 거짓글을 퍼뜨렸다. 이어 사실이 아님이 곧 밝혀졌지만 남성 중심의 게임 커뮤니티는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분노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욕망과 혐오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여성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서사를 집단적으로 생산했고, 퀸을 비롯한 여성 개발자와 기자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들의 집단을 ‘오염’시킨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일이었다.

게이머게이트의 본질은 단순한 온라인 분쟁이 아니었다. 여성 개발자와 기자를 집단적으로 사냥하고, 신상을 털고, 살해와 강간 협박을 하고, 그 과정을 밈과 영상으로 기록해 퍼뜨린 조직적 혐오 캠페인이었다. 그들은 ‘정치적 올바름(PC)’을 조롱했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게임 문화를 망치는 잡음으로 몰아붙였다. 이후 드러난 현실은 그들의 주장과 정반대였다.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진 것은 여성이 성적 매력을 이용해 이득을 챙겼다는 주장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에게 강압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게이머 게이트에 열광했던 이들은 이를 끝까지 부정하며, 오히려 “여성이 스스로 이득을 취하려 했을 뿐”이라는 낡고 왜곡된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와 같은 분노와 혐오는 온라인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정치적 올바름을 깨부수자”는 구호는 곧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자”는 정치적 언어로 확장되었고, 2016년 트럼프의 도그 휘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와 정확히 겹쳐졌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공격적 문화는 미국 정치의 중심부로 흘러들었고, 온라인에서 조직된 혐오는 현실 정치의 동력이 되었다.

게이머게이트는 이러한 일대기를 영상으로 ‘기록’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며 지지층을 확보해 나갔다. ‘여자들 참교육’, ‘랭킹 10위 동양인 노예 만드는 법’, ‘상남자가 PC 때려잡는 영상’ 등의 정서로 자리잡은 게이머게이트의 여파는 게임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로 자아 형성 시기를 시작한 많은 유소년 및 청년들에게 퍼졌고, 소셜미디어의 특성상 이는 미국 내부만이 아닌 세계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가속적인 흐름에는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이 큰 몫을 지고 있다. 새로 시작한 게임의 튜토리얼 영상을 몇 번 시청하면 추천 영상에 게임 커뮤니티의 유명한 유저들이 올린 영상이 뜨고, 그들만의 은어로 가득한 댓글을 읽으며 언어를 배우고, 그러한 단계로 점차 사상적인 영향력의 범주 안으로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에 매몰되는 것이다.

그로이퍼스의 언어적 습관과 정치적 사상은 모두 그들만의 폐쇄적 범주 안에서 형성된다. 그들이 사용하는 유행어는 배타적일수록 오히려 시니컬한 밈으로 소비된다. ‘이건 농담일 뿐’이라는 가면은 혐오 발언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되고, 이들은 그 틈을 빠져나가는 법을 익혔다. 보다 대중적인 공간에서는 서로를 식별하기 위해 암호화된 밈을 활용하고, 이 밈은 맥락을 모르는 이들에겐 단순한 유행어처럼 보인다. AI는 알고리즘을 통해 이러한 반향실 효과(echo chamber)를 부추긴다. 최근 생성형AI 영상의 확산 또한 밈의 양산에 불을 지폈다.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딥페이크 영상뿐 아니라, ‘불편한 골짜기’가 주는 섬뜩한 초현실성을 의도적으로 결합한 ‘브레인 로트(brain rot)’ 영상은 무의미한 문구와 합쳐지며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 이 영상들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젊은 세대에게 냉소와 무감각, 공감의 단절을 습관처럼 학습시킨다. 이런 흐름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10년 넘게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집단적 혐오 발언, 유행어, 콘텐츠가 뒤섞이며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왔다.

그로이퍼스는 이러한 자신들만의 디지털 요새에서 새로운 사회체계와 구조를 구축한다. 여성의 주체성과 사회적 존재감을 완벽히 배제하는 것이 근간인 해당 사상은 여성의 존재를 대체하기 위해 ‘트랜스맥싱(transmaxxing)’이라는 성 정체성의 전환을 지향한다.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중국, 일본, 그리고 현대 탈레반 등의 ‘페데라스티(pederasty 소년애, 소아성애)’처럼 그로이퍼스들은 자신보다 더 ‘연약’하고 ‘여성적’인 남성을 ‘아내’ 역할로 맞이한다. 해당 ‘아내’ 역할의 그로이퍼는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는 등 전통적인 여성상을 추구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완전한 전환이 아닌 남성으로서의 자아를 유지한다. 로빈슨을 둘러싼 트랜스젠더 의혹과 그의 룸메이트와의 동성애 가설은 모두 해당 룸메이트가 ‘트랜스맥서’였다면 설명이 되는 의문점들이다. 이렇듯 그로이퍼스들은 철저히 현실 세계와의 물리적, 감정적 단절을 통해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위계 질서를 성립하고 자신들이 보호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을 지정해 그들만의 나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은 코드화된 공간이다. 사람의 신체가 존재하고 물리적인 공간에서 숨을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한, 완벽한 디지털의 고립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로이퍼스들의 내재적 사상은 점차 주류 인터넷 문화로 자리잡는다. 그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는 극단적 정치 성향을 드러내고, 경직된 가치관과 아이러니한 유머로 위장된 혐오 사상은 점차 힘을 얻는다. 그렇게 온라인의 언어는 결국 현실로 넘어와 현실의 대상자를 겨냥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 층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혐오성 유행어와 ‘계집 신조’ 등의 폭력성 모두 이러한 알고리즘의 문법과 맥락을 같이 한다.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의 혼용, 그 속에서 시니컬한 허무주의적 밈, AI 알고리즘과 이미지들이 빚어낸 현실의 둔감화가 현 시점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로빈슨의 커크 암살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현상에서 절대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일간베스트라는 극단의 혐오적 온라인 커뮤니티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았고, 그에 대응해 만들어진 메갈리아라는 또 다른 부작용까지 목격했다. 일찍이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달한 대한민국은 언어적 폐쇄성과 이미 기저에 만연한 집단주의적 특성으로 알고리즘을 통한 사상 전파와 전이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유력 정치인들을 비롯해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AI 알고리즘과 밈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 정도는 처참할 만큼 박약하다. 젊은 세대의 양극화를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디지털 공간의 왜곡된 사상적 집단성이 현실로 범람했을 때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그 위험성을 극단적 지지층으로 포섭하기 위해 사회의 안전을 담보로 정치적 이익만을 취하기로 택한 것인지는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전자라면 태만이고 후자라면 기만이다. 그러나 이미 디지털 공간의 격리성은 한계에 다다랐고, 이를 더욱 밀도 있게 점화시킨 AI 알고리즘 덕에 더 큰 연쇄 작용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다.

그로이퍼스를 비롯한 온라인 기반의 젊은 극우세력은 아이러니한 유머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 큰 공통점을 두고 있다. 나치라고 비판하고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분노하면 표면적으로 부인하는 기존 보수진영과 달리 그들은 ‘그래서 뭐?’라고 웃어넘긴다. 사회적 문제점과 위험 가능성이 보이는 전조증상에 대한 담론은 ‘너무 깊게 생각한다’, ‘불편충이다’라는 반지성주의적 매도로 대화를 단절시켜버린다. 대한민국 2030세대의 ‘그러지 말고 한잔해’, ‘세 줄 요약 좀’과 맥을 함께하는 감성이다. 우리나라의 강점인 ‘소프트 파워’가 비판적 사고의 부재로 인해 공장형 명품관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부정적인 반응에 보상을 더 주는 AI 알고리즘의 특성을 이용해 ‘분노 유발(rage baiting)’을 하는 ‘어그로꾼’도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로빈슨이 탄피에 새긴 밈도 모두 이러한 배경을 두고 있는 유행어들이었다. 그로이퍼스들의 ‘작전’은 주류 미디어에 노출이 되고 자신들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더 가시화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AI로 사람들의 취향과 정보가 습득이 되는 현 시대에, 그들이 물리적 사회로 나아갈 발판이 더욱 견고해진 것이다.

미국의 보수 주류세력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22일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찰리 커크 추도식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공화당 인사들과 보수 및 극우 유명인들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도식에서 “내 상대 진영을 혐오한다”라고 했다. 지난주 커크의 복수를 위해 진보 진영을 척결할 것이라고 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우리의 선조들은 이 도시들을 지으며 암흑 속에서 빛을 찾았고, 우리는 대를 이어 이것을 지킬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만이 할 수 있다”라는 연설을 남겼다. 밀러의 이같은 표현은 1932년 7월 요제프 괴벨스가 의회 선거를 앞두고 남긴 연설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AI의 사회적 영향력은 노동과 환경뿐만이 아닌 정치와 법, 그리고 개인의 일상적 흐름에까지 이미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기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소셜미디어의 문제점들이 AI를 통해 증폭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맞서 방어하고 대비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행정적 보호, 그리고 비판적 사고 능력이 절망적일 정도로 뒤떨어진다. AI는 중립적인 기술이지만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우리들은 중립적일 수가 없는 존재다. 결국 우리는 AI의 기계적인 이미지에 휩쓸려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사념적인 무의식의 입김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 AI는 인류가 억눌러 올 수밖에 없었던 ‘폭력성’을 드러낼 완벽한 구실일지도 모른다.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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