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불안과 보이지 않는 비용…‘이중 구조’에 갇힌 푸드플레이션 [푸드플레이션, 밥상 위의 위기]

5년간 글로벌 식품가격 35%↑
전체 물가 상승률 25% 웃돌아
지정학·기후변수에 공급 불안 지속
생산량 늘어도 장바구니 물가 그대로
유통 과정서 전가된 2차 가격 충격

▲‘공급 불안’과 ‘보이지 않는 비용’이라는 이중 구조가 최종 소비자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전 세계에서 푸드플레이션이 고착화하고 있다.

<전문>
기후 위기와 공급망 차질 등으로 전 세계 식품 가격이 요동치면서 추석을 앞둔 한국의 장바구니 물가와 외식 비용이 크게 올라 서민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본지는 한국의 밥상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시장의 동향을 분석하고 서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 상황을 진단한다. 더 나아가 푸드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한다.

‘공급 불안’과 ‘보이지 않는 비용’이라는 이중 구조가 최종 소비자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전 세계에서 푸드플레이션이 굳어지고 있다.

8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 식품 물가는 2020년 이후 전체 물가보다 꾸준히 더 빠르게 올랐다. 5년간 세계 식품 가격은 35% 뛰었지만 전체 평균 물가 상승률은 같은 기간 25%에 그쳤다. 이는 농산물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농업·식품 부문에 구조적인 압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 곡물 가격은 표면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속내는 여전히 불안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잠복해 있는 탓에 공급망은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도의 쌀 수출 제한처럼 주요 수출국의 수급 변동에 따라 가격이 다시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후 변수도 심상치 않다. 폭염, 홍수, 산불이 잇따르면서 농부들이 작물을 재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인스티튜트는 갈수록 빈번해지는 기상 이변으로 2050년까지 영국 소비자들의 식품 물가가 최대 30%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엘니뇨와 라니냐가 번갈아 무대에 오르며 브라질과 동남아 곡창지대의 작황은 마치 동전 던지기처럼 불확실해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10월~12월 라니냐 발생 확률을 약 60%로 점쳤다. 공급의 기초 체력이 흔들리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가격 변화가 단순히 곡물 생산량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타임스는 최근 아일랜드 농가가 풍년을 맞았음에도 식품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 상승률의 세 배에 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품 생산량이 풍족해도 가공·유통·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식탁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지수가 상대적으로 안정돼 보이더라도 실제 장바구니 물가가 체감적으로 훨씬 더 가파르게 오른다는 불만이 쏟아지는 이유다.

홍해 무력 충돌, 파나마 운하 가뭄 같은 변수는 글로벌 운임 비용을 끌어올렸다. 여기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규제, 친환경 패키지 비용까지 더해진다. 실제로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은 지난달 통화정책 보고서에서 영국 식품 물가상승률이 유럽연합(EU)보다 높은 이유 중 하나로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제품 생산자에 재활용과 처리 의무를 지우는 제도)’ 도입을 꼽았다. 포장지, 물류, 규제 대응 비용이 모두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이러한 충격은 저소득 국가에 가장 크게 집중된다. 이들은 식량 가격 상승의 영향을 불균형적으로 받고 있다. 유엔 산하 5개 전문 기구가 발간한 ‘세계 식량 안보 및 영양 현황(SOFI)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월 글로벌 중위 식품 물가 상승률이 13.6%였던 반면, 저소득 국가는 같은 해 5월 무려 30%까지 치솟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가격 변화더라도 취약 계층의 식량 불안정은 크게 늘어난다. 분석에 따르면 식량 가격이 10% 상승할 경우 중간 정도 이상의 식량 불안정을 겪는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포인트(p), 극심한 식량 불안정 인구는 1.8%p 각각 커진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식품 원자재 가격 하락이 저소득 국가의 소비자 물가로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서 취약 계층의 부담이 장기화하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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