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정난 키울 것이란 우려 확대
“사립대 교수들은 10년 넘게 연봉이 묶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유능한 교수가 한국 대학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서울의 한 사립대학은 최근 인공지능(AI) 대학원을 신설하며 미국의 저명 교수를 초빙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재정 여력이 턱없이 부족해 처우 조건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가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 뿌리를 장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정책에서 찾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교수는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되면서 대학들은 인건비를 올릴 여력이 없다”며 “그러니 외국 교수는 물론 국내 젊은 연구자조차 한국 대학에서 교수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10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 동결 기조가 17년째 이어지면서 고등교육 현장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학생 부담을 줄인다는 정책 취지였으나 장기화한 등록금 동결이 대학의 재정난을 심화시키고, 고등교육 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 등록금은 2009년부터 사실상 묶였다. 당시 ‘반값 등록금’ 요구가 확산하자 정치권이 잇따라 등록금 인하 공약을 내걸었고, 2011년에는 ‘등록금 상한제’가 도입됐다. 이후 정부는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는 ‘국가장학금Ⅱ유형’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인상을 봉쇄했다. 대학들은 장학금 수혜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반강제로 동결 기조를 이어왔다.

문제는 재정난이 더는 버티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사립대학은 등록금 의존도가 60~80%에 달한다. 등록금은 제자리였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두 배 이상 올랐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17년 동안 물가가 약 134% 올랐는데 등록금은 동결됐다”며 “교원 초빙이나 시설 투자 같은 최소한의 지출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버티던 대학들은 결국 올해 대거 등록금 인상에 나섰다. 전체 4년제 대학 가운데 52.4%인 103개 학교가 법정 인상 상한(5.49%) 내에서 등록금을 올렸다. 장학금 지원보다 인상 효과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 지방 사립대의 한 교수는 “대학들이 올해 등록금을 올린 건 단순한 이득을 계산한 게 아니다. 사실상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며 “등록금은 10년 넘게 묶여 있었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정부의 재정 지원책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 운영을 이어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움직임에 정치권은 즉각 제동을 걸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내년 1학기부터 등록금 인상 상한을 직전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에서 1.2배로 낮추도록 했다. 교육 당국은 학생 부담 경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대학가에서는 재정 압박만 더 키울 것이라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등록금 동결 정책이 고등교육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등록금이 묶여 있다 보니 대학이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이 따르지 않는 구조”라며 “학생 입장에서는 등록금 부담은 줄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