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주의와 컨트롤 타워 부재가 낳은 총체적 난국
"16년 만의 낭보, 원전 강국 코리아의 귀환"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형 원전(K-원전)의 체코 수출을 둘러싸고 쏟아졌던 찬사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이 채 가시기도 전에 K-원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소식들이 잇따르면서 '원전 신화'에 금이 가고 있다. 미래 시장을 통째로 내주는 '족쇄 계약' 논란과 첫 수출 사업의 '적자 전환'이라는 현실은 화려한 수주 성과에 가려진 K-원전의 위태로운 뒷면이라는 평가다.
20일 원전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올해 6월 계약이 성사된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 사업이 실제로는 향후 수십 년간 한국 원전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족쇄 계약'인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1월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은 사실상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북미, 유럽 등 선진국 시장 진출을 원천 차단하고, 중동·동남아 등 일부 신흥 시장으로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용 구조다. 원전 1기 수출 시마다 약 1조1400억 원에 달하는 비용(기자재 구매 9000억 원, 기술료 2400억 원)을 웨스팅하우스에 지불해야 하는 독소조항은 K-원전의 가격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여기에 50년간 유효한 계약 기간과 차세대 먹거리인 소형모듈원자로(SMR)까지 기술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기술 주권의 포기를 넘어 '원전 속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실리를 모두 내준 굴욕 외교라는 비판과 함께 한국 원전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통째로 저당 잡혔다는 우려가 거세다.
K-원전의 '맏형'이자 성공 신화의 상징이었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라카 원전 사업마저 누적 손익 적자로 전환됐다는 소식은 또 다른 충격이다.
한국전력의 올해 상반기 재무제표에 따르면 2009년 당시 수주한 이 사업은 공사 기간이 4년이나 지연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공사 지연으로 발생한 약 1조4000억 원의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를 두고, 사업을 함께 수행한 한전과 한수원이 런던국제중재법원에서 법적 다툼을 벌이는 촌극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무리한 저가 수주와 사업 리스크 관리 실패가 부른 예고된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유관 기관의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여권에서는 체코 원전 수주 관련 계약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백서 발간 수준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전날 대통령실도 산업통상자원부에 관련 계약 내용에 대한 진상 파악을 지시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와 한전, 한수원에선 아직까지 공식 입장이 없는 상태다.
다만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전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체코 원전 '족쇄 계약' 논란에 대해 "계약 조건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사업의 이익을 남기기에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생존을 위한 전략 수정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원전기업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로 잃게 된 선진 시장 대신 성장 잠재력이 큰 신흥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바라카의 교훈을 거울삼아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