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영 자시硏 채권연구센터장 "저신용·취약업종 최대 리스크…하반기 인하 시작"

입력 2024-03-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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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 여의도에는 한국채권연구원이 설립됐다. 박현주 현 미래에셋증권 회장이 당시 미래에셋투신운용을 100% 출자해 벤처기업 형태로 만든 국내 최초의 민간 채권전문 연구기관이다. 국내 증권시장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박 회장은 주식 투자의 대가로 잘 알려졌지만, 채권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채권연구원은 2007년까지도 미래에셋증권의 관계사로 분류됐다.

초대 원장은 박현주 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처남 사이인 오규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가 맡았다. 연구원에는 김경록 이코노미스트(현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신성환 홍익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 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김명직 한양대 교수(전 한국증권학회장) 등 오늘날 국내 금융시장의 굵직한 '거물'들이 모여들었다. 이창용 현 한국은행 총재도 한국채권연구원의 창립멤버였다. 이 총재와 신 교수는 지금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꾸준히 만나 국내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짓고 있다.

국제금융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일찍이 채권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들은 채권 시가평가 및 인덱스 개발, 데이터베이스 구축, 거시경제 전망 등을 내놓으며 오늘날 채권시장의 토대를 구축해나갔다. 한국채권연구원의 명맥이 소리소문없이 끊기게 된 것은 2008년 리먼 사태,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등을 거치면서다. 오랫동안 저금리 시대가 유지됐던 점도 고금리 환경에서 매력인 채권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26년 만인 2024년 1월 여의도 자본시장연구원 산하 채권연구센터가 다시 문을 열었다. 그동안 국채 전문 연구 조직은 한국금융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이따금 개설됐어도, 국고채를 비롯해 특수·공사채, 회사채 등 채권시장 전반을 연구하는 민간 채권기관의 설립은 전무하다.

▲5일 서울 영등포구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정화영 채권연구센터장(박사)이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정회인 기자)

5일 서울 영등포구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정화영 채권연구센터장(박사)을 만났다. 정 센터장은 한국은행에 입사한 후 경제통계국 국민소득총괄팀, 금융시장국 공개시장운영팀 등을 맡으며 채권에만 약 20여 년을 몸담은 채권 전문가다. 자본시장연구원과는 2020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국내 기준금리 인하는 올해 하반기 이후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 센터장은 "지금은 금리를 얼마나 내릴지를 논의할 단계도 아니고, 과연 언제 인하를 시작할지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하가 시작되더라도 과연 얼마나 내려올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금리 수준이 과거와 같은 제로금리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국내 금리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미국의 중립금리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미국의 명목 중립금리가 3%대 중후반이라고 판단했다.

실질 중립금리에 예상 인플레이션을 더한 명목 중립금리가 높다는 것은 기준금리 인상에도 통화 긴축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미국과 우리나라의 물가 경로, 실물 경제가 현재 금리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다.

그는 “중앙은행들이 경제지표에 의존해서 보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방향성이 있다기보다는, 시장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지켜) 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인하까지의 과정에서 변동성이 매우 클 것"이라며 "작년 말까지만 해도 금리 인하 시기를 3월로 봤지만, 지금은 하반기 이후로 보고 있고, 더 밀릴 수도 있다”고 했다.

올해 채권시장의 최대 리스크로는 저신용등급을 보유한 취약업종에서 발생하는 신용위험을 꼽았다. 작년 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연초 채권시장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예상과 달리 국내 채권시장은 순항 중이다.

정 센터장은 “연초에 괜찮다고 해서 올해 전반적으로 모두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시장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리스크”라며 “예상치 못한 부분은 저신용 기업이 이자 비용을 버티지 못하고 수익성이나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용도 하락 등 위험이 발생할 경우”라고 강조했다.

워크아웃 신청 후 도급 16위 건설사였던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은 'A-'에서 'CCC'로 수직 강등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데, 자금 조달 비용은 높은 그런 기업들이 올해는 버텨야 하는 해”라며 “버티지 못하고 디폴트가 난다거나 신용 위험이 발생한다면, 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리스크”라고 짚었다.

다음은 정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 자본시장연구원 채권연구센터의 출범 배경과 연구 분야는.

“채권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더 강화해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시작했다. 기존에 거시금융실, 자본시장실, 금융산업실 등 분리해서 연구하던 채권 이슈를 하나로 묶어 주요 이슈를 더 빠르게 대응하고, 폭넓게 연구하기 위해서다. 이르면 올해 또는 내년 중으로 채권 전문성을 지닌 인력도 충원할 계획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채권시장 관련 제도와 동향 등 현안을 분석하고 있다. 채권시장이라는 게 시장을 만들어가는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본시장연구원에서는 시장 참가자들의 채권 거래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인프라를 잘 구축하고 지원하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 국내 채권시장은 주식보다 훨씬 큰 시장임에도 대중들로부터 인지도가 낮았다.

“2019년 말 개인들의 채권 보유량은 10조 원 정도였는데, 지난달 말에는 50조 원으로 불어났다. 이렇게 관심이 커진 데는 우선 고금리 환경으로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 저금리 시기에는 금리 변동성이 굉장히 낮았지만, 요즘 채권 금리의 변동성은 오히려 주식 변동 시장 변동성보다도 더 크다.”

“또한, 절대적인 채권이 제공하는 금리 수준 자체도 높기 때문에 이자 수익도 커졌다. 개인들의 최근 채권 투자 구성을 보면 국채만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채, 회사채 등 다양한 채권에 투자를 하고 있다. 채권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는 것.”

- 지난달 2008년 국채 10년 선물 이후 약 15년 만에 국채 30년 선물 시장이 개설됐다.

▲한국거래소 30년 국채선물 상장 기념식. (출처=한국거래소)

“아직 (상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장 활성화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국내 국채 선물 3·5·10년 시장과 30년물을 보면 현재까지는 30년물이 5년물(단기물)보다 거래량이 많다. 상장 한 달 만에 그 정도 거래가 있다는 건 시장 수요 기반 자체는 있다는 의미다. 30년 국채 선물 시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거래량이 늘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할 것.”

“현재 기획재정부의 국고채 발행 연물별로 봤을 때 30년물 비중이 가장 크다. 30년물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 참가자들에게 효과적인 헷지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장에 필요성이 굉장히 높다. 다만 해외사례를 봐도 30년물은 10년물만큼 매매가 활발한 시장은 아닌데, 이는 질적인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10년만큼 유통이 안 된다고 해서 문제가 될 지점은 아니라고 본다.”

- 정부에서 첫 '개인투자용 국채' 발행을 오는 6월 앞두고 있는데.

“디폴트(부도) 위험 없이 10년, 20년 동안 확실한 복리로 이자를 주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입장으로 봤을 때도 국채를 매달 발행하는 것보다는 소규모지만 일부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이자를 주고 자금을 조달한다면, 시장으로 유통해야 하는 국채가 줄어든다.”

“수요와 공급 입장에서 볼 때 국채 발행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시장 금리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 결국, 금리를 내리면 국고채 금리의 변동성을 안정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투자용 국채는 과거 팬데믹처럼 갑자기 정부가 국채 발행을 급격하게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버퍼(buffer, 안전판) 역할을 해줄 수 있다.”

- 하이일드 분리과세가 시행되면서 올해 비우량 채권들도 수요예측이 흥행하고 있다.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그동안 신용도가 낮은 비우량 기업들은 자금조달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시장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세제 혜택 등 민간 부문의 자금을 이용해서 비우량 기업들을 돕는 게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 전체의 더 큰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보다는 효율적.”

“다만 개인 투자자도 위험성이 높은 채권에 대해서는 투자를 할 때는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살 필요도 있다. 비우량 채권이라는 이름부터가 위험성이 높다는 의미다. 하이일드 시장은 아무나 들어오는 시장이 돼서는 안 되고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하되, 개인들도 필요하면 각각 적절한 계약 조항을 이용해서 적절한 금리를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

- 저금리에 채권을 발행했던 기업들의 만기가 올해 대거 돌아오는데.

“기업들의 현금 유동성 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아서 아마 상환 수요가 많이 늘어날 거다. 그러면 금리가 높아지다 보니까 올해까지는 금리 이자 비용 자체가 올라갈 것.”

“우량한 기업들은 영업이익 등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충분히 이제 이자 비용의 상승을 감내할 수 있을 텐데, 신용등급이 낮거나 취업 업종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기업들이 신용등급이 낮아져 더 높은 금리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크레딧 시장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

“대표적으로 건설, 화학, 캐피탈 쪽 업종이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당국에서도 이런 기업들이 시장 전체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하는 게 필요하다. 현재 건설사 중심으로 자금 조달이 많이 어려워서 사모시장 발행, 기업 계열사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신용 위험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 앞으로 국내 채권시장에서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지난해 8월 (사진 왼쪽부터) 이순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과 Philip Brown 클리어스트림(Clearstream) 대표이사(CEO)가 국채통합계좌 구축·운영 계약을 체결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국채통합계좌 설치는 외국인들의 투자 접근성을 높여 WGBI 편입 조건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한국예탁결제원)

“국채와 회사채로 나눠 봐야 한다. 국채 시장에 있어서는 FTSE 러셀(Russell)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앞으로도 국채 발행은 늘어나는 추세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 우리나라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는 커지는 반면, 성장성과 세수는 줄어드니까 정부 지출을 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부분이 커질 거다.”

“채권시장 전반의 근간이 되는 인프라는 국채 시장이다. 국채 금리가 제대로 형성돼야만 금융채, 크레딧물의 금리도 제대로 형성될 수 있기 때문. 코로나19 기간 국채 발행량이 굉장히 빠르게 늘어났던 걸 축소하는 과정에서 국채 수요가 잘 받쳐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내 금융사, 보험사, 연기금, 은행 쪽에서 국채 수요가 있었지만, 외국인도 국채 투자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수요가 된다. WGBI에 편입되면 이제 러셀 지수와 연계해서 들어올 수 있는 자금도 많아질 수 있다고 생각.”

“회사채로 보자면 수요 기반을 다양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국내 크레딧 시장은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개인들이 직접 채권투자를 하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채권형 펀드나 퇴직연금, 개인 사적 연금 등을 통해 투자할 수 있는 방편도 있다.”

“물론 개인들의 회사채 투자심리 위축은 과거 동양 사태 등 경험의 영향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회사채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채권시장 참여자들이 투명한 정보를 적시에 전달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개인들이 회사채에 투자할 때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

“국내 크레딧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외국인의 투자 수요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건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이 높지 않아서, 국내 시장의 접근성이 낮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해서 외국인들도 회사채 시장의 투자자로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자본시장연구원 채권연구센터의 향후 목표는.

▲5일 서울 영등포구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정화영 채권연구센터장(박사). (출처=정회인 기자.)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보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적었던 채권시장의 전문성을 제공해 투자자들의 이해를 돕고, 국내 채권시장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단기적으로는 저희가 자본시장연구원에 속해있는 채권연구센터이다보니 국채 이외에 크레딧물, 회사채 시장에 대한 문제도 확대해보고 싶다.”

“사실 국채는 채권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이후 기획재정부 차원에서 국채 관련 자문단 등 연구가 활발했지만, 회사채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부족했다. 자본시장에서 기업 자금조달 수단의 개선점도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싶다.”

“국내 금융은 은행 대출 중심으로 이뤄져있지만, 기업이 장기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려면 단기물보다는 만기가 어느정도 있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 도움이 된다. 기업의 단기물보다 장기 회사채 자금 조달 시장이 발달하는 것이 실물 경제 개선에도 긍정적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회사채 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나가고,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이라는 다양한 투자수단을 제공하고 싶다. 저희가 연구를 통해 투자자들의 채권 시장 신뢰도를 높여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게 추진해나갈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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