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호봉제·전일제만”…‘콘크리트 신념’이 쌓은 고용절벽

입력 2020-01-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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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된 노동시장…과거 고속 성장기 임금·채용 체계 이어져

기업 인건비 부담 상승…신규채용 중단

해외서는 전일제-시간제간 이동 가능

유연한 고용 위한 제도 마련 절실

2000년대 이후 한국 노동시장은 제로섬(zero sum)이 됐다. 기존의 일자리가 유지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기보단, 하나의 일자리가 사라져야 새 일자리가 생겨나는 구조다. 그나마 일자리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는 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사업체가 늘어서다. ‘질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대기업들은 최근 상당수가 신규채용을 중단하거나 기존 인력을 줄이고 있다.

구조적으로는 호봉제로 대표되는 임금체계와 경직적인 고용 형태가 ‘일자리 상생’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호봉제는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임금체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 100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제를 운용하는 사업체 비중은 65.1%였다. 2009년(72.2%)에 비해선 하락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기업 실적이나 근로자별 성과와 무관하게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높이는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성과연봉제에서 연봉이 오르거나 직무급에서 직무 이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게 스텝 업(step up)이고, 임금단체협상 등으로 사업체 내 전체 근로자의 임금이 보편적으로 오르는 게 베이스 업(base up)인데, 호봉제는 유일하게 매년 스텝 업과 베이스 업이 함께 이뤄지는 임금체계”라며 “고속 성장기에 베이스가 너무 많이 오르다 보니, 고령화와 맞물려 기업들의 부담이 급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1989년에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5.6%였는데, 전체 사업체의 임금은 평균 15.2% 올랐다. 1990년을 전후로 급격히 오른 임금 수준은 외환위기(1997년) 이후에도 유지됐다. 이는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 상승, 다시 신규채용 축소로 이어졌다. 나머지 필요 인력은 주로 비정규직으로 메워졌다. 오 소장은 “초임 대비 20년 근속자의 임금(연공성)이 2.5~3배인데, 이는 중고령 근로자 한 명이 나가면 신규 근로자를 2~3명 뽑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일제 위주의 경직적인 고용 형태도 추가 채용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산술적으론 주 40시간제 근로자 2명이 20시간제로 전환하면 주 40시간 일자리 하나가 추가로 생겨나지만, 현장에선 전일제·시간제 간 이동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제는 정규직이라고 해도 전일제와 구분된 절차로 채용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시간제 근로자 중 정규직 비중도 2017년 49.5%에서 지난해 46.1%, 올해 39.9%로 축소되는 추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일과 네덜란드에선 기존 전일제 근로자가 출산·육아 후 시간제로 이동했다가 자녀가 크면 전일제로 복귀할 수 있고, 스웨덴에선 남성도 동일하게 전일제·시간제 간 이동이 가능하다”며 “우리는 전일제가 곧 정규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근로자들도 전일제를 선호하고, 결국 전일제 근무가 어려운 근로자들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르바이트 같은 시간제 비정규직에 재취업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시간제 정규직 활성화는 노사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노조로선 퇴출 목적으로 시간제 전환이 악용될 것이 걱정이고, 기업으로선 근로자 수 증가에 따른 복리후생비 등 직간접 노무비 증가가 부담이다. 이 교수는 “시간제 활성화를 위해선 우선 시간제 전환이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공공부문이 먼저 기존에 시간선택제로 불렸던 단절된 시간제를 전일제와 통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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