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파이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별세…향년 92세

입력 2019-12-1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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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 해결…글로벌 금융위기 재발 방지 ‘볼커률’ 제안도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008년 11월 26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볼커 전 의장은 8일 뉴욕 자택에서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시카고/AP뉴시스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고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금융규제인 ‘볼커룰’을 제안하는 등 글로벌 경제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별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9일(현지시간) 볼커 전 의장이 전날 뉴욕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볼커의 딸인 제니스 지마가 아버지 사망 소식을 밝혔다. 향년 92세.

그는 반세기가 넘는 경력에서 무수히 많은 업적을 남겼다. 금본위제 폐지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응책 제안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과감하고 공격적인 대응으로 마침내 이를 잡아내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명성을 얻었다.

1927년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볼커는 1949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1951년 하버드대에서 정치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1951~52년 영국 런던경제대(LSE)에 있으면서 등록금으로 유럽을 여행해 결국 박사 학위를 받지는 못했다.

볼커의 경력은 1952년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에 취직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5년 후 체이스맨해튼은행으로 이직해 당시 이 은행 부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록펠러와 긴밀하게 일했다. 그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시절인 1962년 미국 재무부 금융분석국 국장에 오르면서 경제관료 경력의 첫발을 내딛었다.

1965년 다시 체이스맨해튼은행으로 돌아갔다고 1969년 워싱턴으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재무부 국제통화정책 담당 차관을 지내면서 1971년 닉슨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본위제를 폐기하고 새로운 국제통화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도록 도왔다.

볼커는 1975~79년 뉴욕 연은 총재를 역임하면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높여야 한다고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내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979년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볼커는 로널드 레이건 시절인 1987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내면서 기준금리를 무려 20%까지 올리면서 마침내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볼커가 연준 의장에서 물러났을 때 미국 기준금리는 6.75%였고 1970년대 말 10% 이상으로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율은 약 4%로 떨어졌다. 이에 볼커는 이후 미국 경제 호황기의 기틀을 닦은 연준 의장으로 평가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볼커는 2009~11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을 맡았다. 이 시기 그의 제안이 크게 반영된 ‘볼커룰’이 마련됐다. 볼커룰은 은행들이 자기자본이나 차입금으로 주식, 채권과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이른바 ‘프롭 트레이딩’을 막아 금융기관의 위험투자를 제한한 것이다. 볼커룰은 2010년 ‘도드-프랭크법’으로 불리는 금융개혁법안의 부속 조항이 됐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현 정부는 은행 규제를 완화하는 볼커룰 개정안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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