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 부동산’ 돌려받을 수 있을까...“투기 원흉”vs“채권 보호”

입력 2019-02-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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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주심 "도박ㆍ성매매보다 반사회적 아닌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채권계약의 형식을 빌려 다른 사람에게 명의만 이전시킨 '명의신탁 부동산'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명의신탁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대법원은 2002년부터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민법상 실소유자의 소유권을 인정해왔다. 이에 학계를 중심으로 법원이 탈법 행위를 용인해 주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20일 공개변론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앞서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명의신탁 부동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한 A 씨와 매매증명을 받아 다른 사람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농지를 돌려달라는 B 씨의 상고심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A 씨와 B 씨는 부동산실명법상 명의신탁은 무효라는 판단에 따라 1,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이날 전합은 농지법상 처분명령을 회피하기 위해 이뤄진 신탁 행위로 인한 수탁자의 소유권등기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불법원인급여란 도박이나 성매매처럼 범죄행위를 한 데 대한 보수로서 돈을 준 경우를 말한다.

이날 양측 대리인, 참고인들은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 앞으로 등기를 마친 부동산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대법관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질의를 이어갔다.

주심인 조희대 대법관은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해 준 그동안의 판례에 대해 부정적인 취지의 질문을 쏟아냈다.

조 대법관은 "1997년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30년간 각종 예금거래가 투명해지는 효과가 있었다"면서 "1995년부터 시행된 부동산실명법으로 인한 부동산실명제도 우리 사회질서로 자리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송오식 전남대 교수는 "과거와 달리 자리를 잡았다"면서도 "다만 명의신탁은 다양한 유형으로 이뤄지는 만큼 행위 자체를 일률적으로 반사회적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채권(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헌법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 대법관은 원고 측 참고인인 박동진 연세대 교수에게도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박 교수는 "명의신탁은 근절돼야 할 위법이지만, 불법행위에 관여한 명의수탁자(등기권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명의신탁 약정을 불법원인급여로 보기보다 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정도가 반사회적, 반도덕적, 반윤리적인지 엄격히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법관은 피고 측 참고인인 오시영 숭실대 교수에게 "부동산 명의신탁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했는데, 실명제를 따르지 않는 실소유주를 사회가 끝까지 보호해 줄 필요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오 교수는 "부동산실명법에는 신탁자, 수탁자, 매도인을 구분 짓지 않는다"면서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입법 취지대로 누구든지 실명제를 따라야 하며 위반 행위를 법원에서 용인해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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