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중소기업에서 16년 일하고 서울 전세 살아요”

입력 2016-03-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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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주인이 반전세로 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정 안되면 인천 가야지 뭐….”

저보다 조금 더 일찍 ‘품절녀’ 대열에 합류한 친구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신혼집 전세계약 만료가 석 달밖에 안 남았거든요. 시세를 알아보니 8000만원 정도 올랐다 합니다. “돈 있어?”란 질문에 “식 올리자마자 애 낳고 일 쉬었는데 뭔 돈이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쉽니다. 친구의 표정엔 ‘결혼한 지 벌써 2년, 아이도 어느새 한 살’이란 행복함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친구 말을 듣고 있자니 저도 걱정이 슬금슬금 밀려옵니다. 2년 전 ‘일주일 내 계약금 완납’을 전제로 저렴하게 신혼집을 구한 터라, 9월 재계약 때 시세를 맞추려면 1억원 가까이 더 마련해야 하거든요. 이마저도 집 주인이 반전세로 돌리지 않는 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미친 전세값,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KB부동산에 따르면 이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4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조사를 시작한 2011년 6월 이후 처음입니다. 집값 하락 경고음이 무색하게 1년 새 7000만원이나 올랐습니다.

대기업(평균 연봉 3893만원)에 다니는 미생이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간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중소기업(2455만원)에 다닌다면 6년이 더 필요하죠. 물론 연봉 인상률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계산입니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 임금동결 확산’, ‘금융사들, 신입 초임 삭감’ 기사 속에서 희망을 품는 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지역별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출처=KB부동산)

그래서 서울 사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삿짐을 쌉니다.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려던 신혼부부도 경기, 인천으로 발걸음을 돌리죠. 치솟는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울 외곽으로 이주하는 전세 노마드, 꽤 많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을 빠져나간 인구는 8200명에 달합니다. 순유출 전국 1위입니다. 같은 기간 경기도에는 9700명이 이사를 왔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12개월째 순유입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네요. 10일 이투데이에 게재된 ‘지난해 탈서울 인구, 경기도 유입인구 절반 넘었다’를 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수요가 몰리면 가격은 오릅니다. 이달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억8800만원을 기록했는데요. 지난달(2억8600만원)과 비교하면 200만원 가까이(0.62%) 올랐습니다. 경기(0.23%)와 인천(0.25%)의 전세값 상승률이 서울(0.27%) 못지않습니다.

문제는 집값 하락에도 불구하고 ‘헬전세(전세 지옥)’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강남 재건축 때문인데요. 현재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강남권 아파트는 2만 세대에 달합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올해 안에 이주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남 3구의 올해 입주 가능 물량(아파트ㆍ임대ㆍ도시형생활주택)은 6400가구에 불과합니다. 내년엔 1600가구뿐이라고 하네요. 강남에서 밀려난 세입자들 때문에 주변 전세값도 덩달아 뛰는 ‘도미노 전세난’이 불가피합니다.

(출처=MBC '나 혼자산다')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많은 사람이 힘겹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지난해 MBC ‘나 혼자 산다’의 무지개 회원이었던 배우 황석정의 말입니다. 이사를 위해 복덕방을 전전하던 그녀가 ‘헬전세’의 현실을 체감하고 내뱉은 한숨이죠. 어쩔 수 없이 전세 노마드로 내몰린 미생들의 울연함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병신년(丙申年), 버티기 힘든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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