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햇살에 대한 소묘 - 아리움 디자인 강규호 대표

입력 2014-07-1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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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점자로 흐르던 날

가끔 눈 먼 바람이 와 모든 점자를 해독하면

민들레 홑씨처럼 쏟아지는 자음과 모음

‘ㅎ’‘ㅐ’‘ㅅ', 'ㅅ’‘ㅏ’‘ㄹ'

그 길을 밟고

다지며 한 뼘씩 자라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그 속에 깃든 햇살이

한 없이 눈부신데

오후 한 때 나는 보았네

보도블록에 정차한 무거운 햇살을 등에 이고,

낡은 비문처럼 암각(岩刻)된 갑골문자를 해독하는 *헤라 노인과

그 뒤를 따라 걷는 유년의 푸른 꿈 가득

추억이 안단테로 흐르는 것을.

바람이 구름 속 점자를 해독할 때 마다

그림자 보다 더 짙게 그려지던 그 노인

보도블록 위 해독한 글자들이 즐비하다

* 헤라 :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기구

* 안단테(andante) : 음악의 빠르기 중 ‘느리게’를 나타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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