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조코위 낙승 예상됐으나 프라보워 강력한 조직력으로 바짝 추격
인도네시아의 9일(현지시간) 대선을 앞두고 개혁 성향의 투쟁민주당(PDIP)연합 조코 위도도(조코위) 후보와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선거 초기만 해도 조코위의 낙승이 예상됐다. 여론조사기관 로이모건에 따르면 지난 5월 조코위 지지율은 42%로 프라보워(24%)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달 조사에서는 조코위가 52%, 프라보워가 48%로 지지율이 오차범위 이내로 좁혀졌다.
프라보워 측이 조코위는 PDIP 총재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중국계 기독교인이라는 흑색선전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또 프라보워는 강력한 조직력과 자금력을 앞세워 조코위의 지지율을 잠식하고 있다.
두 사람의 출신배경과 지지층은 전혀 다르다는 평가다. 조코위는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군부나 정치권 배경 없이 자수성가했다. 그는 수라카르타의 빈민가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한 뒤 가구사업을 벌였다. 2005년 고향 수라카르타 시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개혁 성향에 서민 친화적 이미지로 시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2012년 임기 만료 전에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자 수라카르타 시민이 조코위를 잃고 싶지 않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자카르타 주지사를 맡은 후에도 시장 시절처럼 지역 곳곳의 빈민가를 불쑥불쑥 방문해 주민의 고충을 듣는 모습을 보였다.
프라보워는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로 장인 집권 당시인 1995년 유럽인 인질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준장에 진급했다. 이후 특전사령관과 전략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1998년 5월 폭동 당시 민주주의 인사에 대한 고문과 성폭행 등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강제 전역하고 요르단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나 인도네시아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화교들은 조코위 후보를 선호하고 있다는 평가다. 두 후보 모두 경제 민족주의를 표방하나 조코위가 좀 더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