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이 사외이사들이 한국IBM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를 강행하면서 이건호 행장과의 대립각을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사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직접 상정하는 등 사실상 국민은행의 경영 컨트롤 타워가 붕괴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23일 여의도 본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회의를 열고 한국IBM 신고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6명 등 이사진 10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외이사들은 주전산시스템 교체 관련 경영판단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이사회 결정의 정당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이 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날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한국IBM을 제소키로 한 결정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은행 내부에서도 법률검토 결과, 한국IBM의 시장지배와 거래행위 등에 대해 '공정위에 신고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사회 개최 직전까지 안건 제목만을 통보받았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중웅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 직후 "한국IBM의 시장 형태를 공정위에서 조사하다 보면 진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라며 "이사회가 유닉스 전산시스템으로 교체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정당성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 행장과 정병기 감사에 대한 책임론을 다시 언급한 것으로 결국 전산시템 교체를 둘러싸고 불거진 일련의 내분 사태가 한국IBM 대표가 이 행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셈이다.
이날 이사회 결정으로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국민은행 이사회의 내부 갈등은 금융당국에서 공정위로 확산되는 등 자체 진화는 이미 물거품 수준에 이르고 있다.
무엇보다 사외이사들의 강행 결정에 이 행장의 리더십에는 치명적인 흠집이 생겼다. 이날 임시 이사회 개최와 안건 상정은 사외이사들이 이 행장과 정 감사는 물론 은행 임원진의 관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추진됐다. 경영진이 아닌 사외이사들이 경영 안건을 이사회에 직접 상정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내부 경영 판단에 있어 경영진을 배제한 사외이사들의 활동이 또 다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는 26일 금융감독원이 경영진에 대한 제재를 확정하고 이들의 거취가 정해지기 전까지 전산 교체를 둘러싼 이사회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이사회의 결정이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전산시스템 갈등 등과 관련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 행장 양측에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