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자기모순에 빠져가는 아베 정권 -배수경 온라인뉴스부 뉴스팀장

입력 2014-06-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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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세 명의 아이가 놀이터에서 매일 만나 구슬치기를 한다고 치자. 이 아이들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구슬치기 동맹을 유지한다.

놀이터에는 A·B·C 외에 이들을 지켜보는 아이 D가 있다. D는 성격이 독특해 A·B·C의 구슬치기 놀이에 끼지 못하고 구경만 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A·B·C 중 C가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려 구슬치기 그룹에서 빠지게 됐다. 그룹에서 빠진 C는 자기 없이도 구슬치기에 열중하는 A·B를 보자 심술이 발동한다.

C는 자신이 갖고 있던 소중한 구슬을 주겠다며 D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자 D는 구슬을 주는 조건에다 A·B가 노는 곳에 모래를 뿌리고 달아나자고 제안한다.

그때 갑자기 어른 한 명이 나타나 C·D의 모의는 물거품이 된다.

네 아이 중 C의 결말은 뻔하다.

이 네 아이들의 모습은 한·미·일·중, 그리고 북한의 관계구도와 닮아있다.

일본과 북한이 최근 북한의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 재조사를 구실로 밀월관계에 돌입했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자에 대한 재조사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일본은 일부 대북 제재 조치를 해제키로 했다.

일본의 이번 결정은 매우 뜻밖이다. 일본은 북한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처음 인정한 2002년부터 대북 제재를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다. 또한 북한에 의한 핵실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대북 제재 수위를 높여왔다.

그랬던 일본이 납치 피해자 문제를 고리로 대북 제재를 해제키로 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및 공조 협력에 균열이 불가피하게 됐다.

일본은 이번 결정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납치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들의 고령화 등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를 들고 있다. 예를 들어 납북자 마쓰노 가오루씨(납치 당시 26세)의 모친은 자식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두 차례의 죽을 고비까지 넘겼지만 올 1월 향년 92세로 사망했다.

문제는 아베 신조 정부가 자국 내 여론을 핑계로 북한과 손을 잡음으로써 한·미·일 공조와 한·일 관계 개선 여지를 닫아버렸다는 점이다. 영유권 분쟁과 역사 문제로 한국과 중국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 동북아시아 주요국 가운데서 고립되고, 미국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이같이 ‘위험한 도발’은 이미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조짐이 있었다. 그는 총리에 취임한 직후인 작년 2월 미국 워싱턴 방문 당시 미국 싱크탱크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일본은 돌아갈 것(JAPAN IS BACK)”이라고 공언했다. 당시 그는 ‘일본은 2급 국가로 전락하고 마는가’라는 CSIS 논문을 언급하며 “일본은 지금도 앞으로도 2급 국가는 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돌아왔다. 일본도 그래야 한다”라며 일본의 회귀를 강조했다.

대체 무엇을 되돌리겠다는 것인가. 그의 이같은 발언에는 우경화를 앞세워 자국 내 결속을 강화하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다. 아베 정권은 2차 대전 이후 전쟁 포기 선언을 규정한 ‘평화헌법 9조’에 대한 개정 가능성을 시사하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등 자기모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자기모순은 미·일 동맹 관계에 대한 부담이 출발점이다. 미국이 재정난 때문에 국방비를 삭감하면서 일본은 국방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스스로 책임지도록 압박을 받아왔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해 미국의 국방비를 경감시켜주면 미·일관계가 더 강화된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주변국의 양해 없이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하기로 한 일본은 나중에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의 예기치 못한 도발로 북한을 둘러싼 국제 공조는 흔들리게 된 반면, 한·미·일·중 관계를 주시하던 북한엔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됐다.

그동안 일본은 일본인 피랍, 핵실험 등을 이유로 대북 전면적 수출입 중단, 북한 특정 기업과 민간 거래 금지,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 대북 송금 제한액 대폭 축소 등 독자적인 제재를 가했다. 일본이 대북 제재를 푸는 것으로 인해 북한이 핵실험 등에 활로를 찾게 될 경우 발생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의 몫이다.

배수경 기자 sue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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