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속도내라’ 주문에도 동부·한진·현대그룹 등 미적미적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속도전 주문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구조조정이 답보상태에 빠졌다. 동부·한진·현대그룹의 유동성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져 대기업 구조조정 논의가 다시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13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산업은행이 지지부진한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STX그룹, 쌍용건설 등 대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1조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이번에는 동부·한진·현대그룹 등의 더딘 구조조정에 따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금융당국 압박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이 제 역할을 못해 구조조정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동부, 한진, 현대그룹 등이 알짜 계열사와 핵심자산을 팔겠다는 자구책을 밝혔지만 3개월이 지난 현재 갈 길이 멀다. 산업은행은 포스코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인수를 제안한 상태지만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좀더 스터디를 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총 1조원에 달하는 대형 매각 물건인 현대그룹 금융계열사(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의 매각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한진해운 리스크도 산업은행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이처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자구계획안을 토대로 과감한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 속도를 주문하지만 시장의 반응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당초 이들 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진행해 시장 안전판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었지만 일정부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동부·한진·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이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금융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자구계획 이행 의지는 낮아질 수 있고 채권은행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면 지나친 옥죄기는 자산 헐값 매각이라는 부작용 우려를 낳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의 부실이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주지 않도록 사전 차단 능력을 키워야 하지만 막무가내식 압박은 인수 희망자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부실을 더 크게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