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불안·부실공화국]금융시스템 경고등이 꺼졌다…한국 경제 빨간불 켜진다

입력 2014-03-12 10:33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횡령사건에 대출사기정보유출…신뢰 추락으로 경제까지 ‘흔들’

‘5000억원대 불법대출, 1조8000억원 대출사기, 1억건 개인정보 유출…’.

대한민국 금융시스템의 허점과 부실, 오작동으로 드러난 졸작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금융권이다. 올 초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진정되기도 전에 사상 최대 규모의 대출 사기 사건이 적발됐다. 위조된 대출 서류로 1조8000억원의 돈이 오가는 데도 하나·국민·농협은행 등 피해 은행 16곳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우리 금융권의 허술한 여신시스템을 그대로 보여 준다.

지난해 하반기 국민은행 도쿄지점장의 대형 횡령 사건과 올해 초 카드사들의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태에 이은 대출사기 악재까지 금융시스템 붕괴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금융회사는 민간기업이지만 사회적 인프라를 구성하고 공익성을 내포하고 있어 신뢰 추락에 따른 경제적 위협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내부통제 경보시스템은 없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대형 금융사고는 내부통제 부실이 화근이었다. 지난해 1월 농협은행에서는 1300억원 규모의 파생상품 거래조작 사건이 발생했다. 파생상품 딜러 A씨는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2010∼2012년 거래 가격을 조작하고 가짜 거래 명세를 만드는 식으로 손익을 조작했다. 2년여간 A씨의 거래 조작을 눈치챈 은행 내부자는 없었다.

지난해 11월 발행한 국민은행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 역시 2년 넘게 내부적으로 은밀하게 진행됐다. 더구나 은행 감찰반 직원은 채권을 위조한 사실을 눈감아 줬고 창구 직원은 채권이 위조된 사실을 알면서도 현금으로 바꿔 줬다.

올초 발생한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사고와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 공모 사기대출의 경우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적발하기 전까지 해당 금융사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정밀한 여신관리 시스템 없이 대기업 인감만 제출하면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는 도덕적 해이 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실제 이번 대출사기 사건은 관행에 얽매인 여신심사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겐 지나치게 엄격하면서 대기업엔 지나치게 관대한 금융권의 이중적 자세도 다시 문제로 지적됐다. 1조8000억원의 대출이 이뤄졌지만 현장 방문과 크로스 체크라는 원칙을 무시했다.

원리원칙대로 이뤄져야 할 내부통제가 ‘이제껏 별 문제 없지 않았느냐’는 식의 관행 때문에 무력화됐다. 사고가 날 때마다 같은 금융회사의 이름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 문제의 뿌리가 깊다는 얘기다.

◇구조화 여신 문제점 여전히 노출…대출사기 또 터진다 = 우리 금융시스템이 초보적 내부 범죄도 스스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현 금융시스템에 대한 개편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특히 현재 은행권 여신심사 시스템을 고집하다간 또 다른 대출사기를 불러온다는 지적이다.

현재 은행들은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대출이 이뤄지는 기업대출을 여신심사위원회(여신위)를 통해 가능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여신담당 부행장이 위원장을 맡고 관련 부장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투표를 통해 여신을 결정하고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은행장은 원칙적으로 대출 심사과정에서 배제된다.

다시 말해 여신·리스크 관리·자금담당 임원과 간부 6~8명으로 구성된 여신위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것이다. 과거 은행장 또는 여신담당 최고 임원, 부장이 전결로 대출하던 것을 여신위를 통한 협의체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대출 책임에 있어 은행장 개인에서 집단방어 체제로 변경했다는 점도 큰 변화다. 문제는 여신심사가 형식적으로 진행될 경우 심사 과정에 외부 청탁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대출 비리가 발생해 은행장들이 줄줄이 구속되자 금융당국이 은행장의 여신심사 전결권을 없앤 것이다.

그러나 은행장이 여신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부실 대출에 따른 관리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특히 거액의 기업여신의 경우 은행장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를 공식화하자는 의견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잇따른 대출사고로 은행장의 실질적 권한에 대한 책임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은행장이 공식적으로 여신심사에 관여토록 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여신이 실행된 이후 사후관리에도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신·심사와 같은 핵심 업무에서조차 기본적이고 필수적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은행 경영의 방만함과 느슨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에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