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불온한 금기어인가 [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3-12-1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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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사진 = NEW)

칼바람이 분다. 겨울이다. 개봉도 안 된 영화에 일부 네티즌의 평점 테러가 자행됐다. 육신 아닌 정신에 한기를 체감한다. 그리고 그 영화의 주연 배우에 올 한해 영화 세 편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급전 필요한가’라는 제목을 단 황당한 기사를 목도하며 악의를 절감한다. 영화 출연에 대한 불편함과 불안감에 대한 배우들의 토로를 들으며 섬뜩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영화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이들에게 ‘친노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보며 양성우 시인이 노래했던 ‘겨울공화국’의 망령과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지배본질이라고 했던 총체적 테러를 떠올리게 한다.

12월19일 개봉하는 영화‘변호인’이다. 영화는 1981년 부림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변모하는 한 변호사의 성장 드라마다. 노무현 삶을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영화가 실존인물의 삶을 모티브로 삼았고, 그 실존인물이 매우 유명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것은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영화는 1980년대라는 첨예한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한 한 인물의 성장극을 통하여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을 일깨운다’라는 영화평론가 황진미의 지적처럼 ‘변호인’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을 통해 2013년 오늘에도 여전히 필요한 시대정신과 휴머니즘, 민주주의의 가치를 드러내는 영화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변호인’이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에서부터, 배우 캐스팅, 홍보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각종 논란과 묻지마 비난이 이어졌다. 급기야 개봉을 앞둔 시점에선 ‘변호인’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평점 테러가 난무했고 영화와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마저 ‘종북’이라는 볼온한 낙인을 찍는 작태가 횡행한다.

무서운 종북 프레임의 덫은‘변호인’에만 쳐진 것이 아니다. 2013년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엄습하고 있다.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을 비판하며 국정원 개혁을 요구해도,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도 어느 사이 종북의 색깔이 드리워진다.

이제‘종북’이라는 호명은 어느 사이 정권과 다른 입장을 보이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묵종(黙從)을 강요하고 침묵을 강제하는 공포의 무기가 됐다. 난무하는 종북의 프레임 속에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신의 사상과 표현의 검열 내재화를 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사진 = NEW)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고 다름과 차이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압살된다. 한나 아렌트는‘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등의 저서에서 다양한 공포를 양산하는 테러를 통해 사람들의 말하기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무력화시키고 사고를 마비시키면 민주주의는 설자리를 잃고 그 자리에 전체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고 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에 자신들만의 규칙과 체계만의 고집하며 타인에게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들이 권력층 내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네 /물려줄 것은 부끄러움뿐 /잠든 아기의 베게 맡에서 /우리들은 또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라는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의 한 귀절을 되 뇌이게 하고 1980년대 초 E.H카의‘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교양서마저 볼온서적으로 지정하고 그 책을 읽는 사람에게‘용공’이라는 색깔을 입혔던 야만의 시절을 드러낸 ‘변호인’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노무현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도 보지 않은 채‘종북’이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극단주의에 절망하게 된다.

2013년 겨울 초입, 눈보라가 세차다. 한기가 엄습한다. 하지만 그 한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와 다르다고 그리고 차이가 있다고 해서 자신의 논리만을 강제하며 침묵을 강요하는 공포다. 노무현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노무현에 대해 찬사를 보낼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노무현의 시비(是非)를 논할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노무현에 대한 언급조차 봉쇄하는 건 민주주의를 죽이는 일이다. 2013년 대한민국에선 ‘노무현’은 정말 불온한 금기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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