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조국현 신한금융투자 홍보실 과장 "'꽃들의 웃음판'을 읽고"

입력 2012-09-2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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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달에 허전히 그림자 끌고 가니

누런 꽃 붉은 잎은 정을 담뿍 머금었네

구름 모래 아마득히 물어 볼 사람 없어

나루 누각 기둥 돌며 여다홉 번 기대었소

을사사화 때 진도에서 19년간 귀양살이하던 노수신(1515~1590)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른 새벽 긴 그림자를 이끌며 나룻가 누각에 가서, 이리 오려나 싶어 이편 기둥에 기대어 섰다가, 혹시 저편일까 싶어 저편 기둥으로 옮아가는 기다림이 애처로운 모습이다.

지은이 정민 교수는 500년 전 기다림이나 지금의 기다림이나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서 반가울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오늘의 황지우 시를 읊조린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후략)

옛 시인의 마음과 지금 시인의 마음이 어찌하면 이리도 같을 수 있을까? 때에는 고금이 있어도 인간의 정서에는 지금과 옛날 사이에 아무런 다름이 없나 보다.

이 책은 계절 마다 어울리는 한시(漢詩)를 소개하고, 비슷한 감정을 노래한 현대시나 외국시 같은 요즘 시를 덧붙여 준다. 그 덧붙임은 진부하고 거리감 느껴지는 한시에 우리를 한 걸음 다가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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