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는 동안 심장 높이와 비슷하던 발의 위치가 아침에 일어나 걷기 시작하면 바닥으로 내려가 피가 몰리기 시작해서인지 상처 난 부분에 알코올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진다. 출근 후 한 두 시간 정도 흐르면 아픈 것도 어느 정도 무감각해지는데 - 그래서 참을 만 하다. - 사무실까지 향하는 동안은 꽤 불편하다. 왼쪽은 오른 발과 균형을 맞추느라 무릎을 굽히게 되고, 오른쪽은 발을 디딘 후 걸을 때 발등 상처가 신발에 닿아 아픈 것이다. 그래서 출근하는 길 지하철 역 까지는 평소 걷는 시간의 2배 이상이 걸린다. 걷는 동안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앞으로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바쁜 출근시간 불편하게 걷는 나를 바라보며 때론 측은하게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하루하루 지날 수록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그런지 걸음도 조금씩 빨라지고 아픈 느낌도 조금씩 줄어들긴 한다.
장애란 본래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장애(障碍)자란 육체적·정신적 결함으로 장기간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을 지칭한다. 요즘 통증으로 인해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는데, 어쩌면 이것도 일시적인 장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며칠 불편한 걸음걸이로 걷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애(障碍)란 단어는 어쩌면 처음 쓰였을 때 장애(長愛)란 글자였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길게 사랑해주란 뜻이었을 것이다. 상대의 그 불편함을 마음으로 보듬어 감싸주라고 말이다. 지금의 내 불편함은 며칠이 흐르고 한 두 주가 흐르면 어느 새 아물어 잊혀져 갈 것이다. 상처가 주는 아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알코올이나 포비돈 용액으로 소독하는 것은 이러한 사랑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결국 상처가 아문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 내가 무심코 흘려버린 이야기들로 인해 누군가 마음의 장애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누군가의 그 말로 인해 심적 장애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상처는 끊임없는 사랑이 뒷받침 되어야 아물 수 있는 한 가지 보편적 치료제가 필요한 현상이다. 부상의 흔적은 그래서 내가 상대에게 필요로 했던 관심과 사랑의 필요한 자취이자 상대방이 내게 보여준 관심과 사랑의 자국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