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여성들의 워너비, 샤넬의 성공스토리

입력 2012-08-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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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 깬 혁신적 사고… 여성에게 자유를 주다

“사람들은 나의 옷 입는 모습을 보고 비웃었지만 그것이 바로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나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가브리엘 샤넬)

‘샤넬’이 여성들에게 차지하는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 패션 산업에서 샤넬은 독보적인 존재고 새 시즌 샤넬의 디자인은 전 세계에서 유행을 이끈다. 유통 분야에서 샤넬 가방의 가격은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프랑스 깜봉거리의 샤넬 부티크는 관광명소가 됐다. 샤넬은 단순히 브랜드 이름이 아니다. 샤넬은 여자들에게 일과 애티튜드의 롤모델이다.

▲"모든 유행은 마담 샤넬로부터 나온다" 당시 샤넬은 패션을 비즈니스로 확장시킨 최초의 디자이너였고 일과 사랑에 있어 주체적인 여성의 상징이었다.
◇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최초의 여성= 샤넬은 야심있고 독립적이며 일과 사랑 모두에 열정적인 여자였다. 당시 여성들에게 성공은 계층에 관계없이 부유한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샤넬은 달랐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상대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신의 일을 크게 확장했다.

샤넬은 에티엔 발장이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디자이너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는다. 밤 무대에서 가수로 일하던 그녀는 발장의 후원을 받아 모자 가게를 열었다. 샤넬이 만든 모자는 곧 상류층 여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즈음 샤넬은 아서 카펠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이 때 의상 디자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남성의 속옷으로 주로 사용됐던 저지를 이용해 치마를 만들고 널리 쓰이지 않았던 트위드 직물로 재킷을 만든 것이 이 시기다. 본인만의 스타일로 유럽과 미국의 패션계를 주도하며 샤넬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다.

아서 카펠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샤넬은 12살 연하의 드미트리 파블로비치와 교제를 시작한다. 향수광이었던 파블로비치의 영향을 받아 샤넬은 최초로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향수를 발표한다. 이 향수가 바로 ‘샤넬 넘버5’이다. 샤넬 넘버5는 지금도 5초에 한 병씩 팔리고 있다.

파블로비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샤넬은 영국 귀족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만난다. 그는 주얼리를 수집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고 샤넬은 곧 주얼리 컬렉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 샤넬은 당시 ‘여자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자신의 길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노년의 코코 샤넬.
◇ 통념을 깨는 혁신적인 사고= 샤넬의 성공은 틀을 깨는 사고방식과 관습에 도전하는 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녀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즈음이다. 당시 유럽은 전쟁으로 남자들이 고국을 떠나고 여자들은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경제활동에 뛰어들었다.

전쟁 전 보편적이던 꽉 조이는 코르셋과 긴 치마는 사회 활동을 하는 여자들에게는 무척 불편한 옷이었다. 집 밖으로 나온 여자들은 좀 더 활동적이고 편한 옷을 원했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열망했다. 샤넬은 이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간파했다.

일명 ‘샤넬 라인’이라 불리는 디자인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 시기이다. 샤넬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코르셋 대신 직선으로 떨어지는 옷을 선보였다. 활동하는 여성들을 위해 최초로 핸드백에 어깨끈을 달아 양손을 해방시켰고 최초로 여자 바지 정장을 만들기도 했다. 여름이면 매년 유행하는 스트라이프 셔츠나 뒤꿈치가 보이는 슬링백 슈즈도 샤넬이 처음 디자인한 것이다. 샤넬의 디자인은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또 샤넬은 상복으로만 활용했던 검은색이 세련되고 유혹적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검은색을 드레스에 처음 이용해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LBD)’는 전 세계 여성들의 스타일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 미국판 보그는 여자들이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할 옷 중 하나로 LBD를 뽑았다. 그녀는 ‘진정으로 럭셔리한 스타일이라면 편해야한다, 편하지 않다면 럭셔리한것이 아니다’, ‘럭셔리는 빈곤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함의 반대말이다’ 등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스타일에 대한 철학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준다.

◇ 자신만의 스타일, 일에 대한 자부심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샤넬은 침체기를 겪는다.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올이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뉴룩’으로 패션계를 휩쓴다. 이 때 샤넬이 “패션은 조크가 됐다, 디자이너들은 드레스 안에 여자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곧 샤넬은 1954년 71세의 나이에 ‘트위드 수트’를 들고 화려하게 복귀한다. 트위드 수트는 샤넬 재킷하면 떠올리는 칼라 없는 카디건 스타일의 재킷이다. 샤넬의 디자인은 파리뿐 아니라 유럽, 미국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침체기를 맞았던 회사는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어 이듬해인 1955년 C자가 서로 교차된 모양의 핸드백 잠금쇠가 만들어지고 샤넬은 미국에서 주최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 선정돼 패션 오스카상을 수상한다.

샤넬의 사업은 곧 현대 패션 비즈니스의 모델이 됐다. 그러나 샤넬의 성공은 단순히 사업적인 부분에서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샤넬이 여성들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바로 남성 위주의 세계에서 오롯이 자립한 최초의 여성이자 동시대 여성들에게 자유를 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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