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재벌 압박’을 ‘경제민주화’ 포장…시민단체도 순환출자 금지 등 목소리 높여
대한민국이 시끌벅적하다. 양극화에서 비롯된 경제민주화 논쟁 때문이다. 그간 정치권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던 재벌개혁론에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했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는 재계를 제외하곤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 모두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民·政·財 모두가 각자의 논리를 내세우며 경제민주화를 제 입맛에 맞게 포장해 가져다 쓰기 바쁘다.
시민단체는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과 동일시하며 최고 수준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도 총선 때 벌어진 복지 논쟁에 이어 연말 대선을 의식해 정도의 차이일 뿐, 與·野 모두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재계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공세에 코너로 몰린 재계는 침묵 끝에 ‘경제민주화=反재벌·反대기업’이란 등식을 해소하기 위한 여론 조성 및 입법 저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개혁의 수준은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안을 내놓는 정치권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주요 시민단체들은 현재 재벌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 경제 시스템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 경제 정책들이 재벌 위주로 돼 있다 보니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에 골목상권이 침해를 당해도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대응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질서 회복과 공정한 경쟁을 위해 일정 수준의 감시와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주요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경제개혁연대는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 부활, 법인세 인상, 금산분리법 시행, 지주사 개선 등을 중요 개혁 안건으로 꼽고 있다.
특히 순환출자는 현재 재벌 지배구조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만약 순환출자가 전면 규제될 경우 현 재벌 체제가 와해될 수 있을 만큼 예민한 사안이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도 다수이나 현대차 등 상당수 재벌그룹들은 여전히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기회균등 선발제, 출자총액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근절, 지주사 규제 강화 등의 ‘경제민주화 10대 핵심정책’을 비롯해 6대 정책약속과 52개 실천과제를 ‘경제민주화 실현과 민생안정’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했다.
새누리당도 야권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내부거래 정기 조사, 무분별한 중소 사업영역 진출 방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의 대기업 정책이 포함된 책임담세, 시장경제 질서 확립, 소상공인 지원 강화 등 3대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했다.
통합진보당도 순환출자 금지, 출총제한 25% 강화, 계열사 출자금 과세, 청년의무고용할당제 등이 포함된 ‘재벌해체와 경제민주화를 위한 5+4 공약’을 내놨다.
◇ 재계“경제민주화 본질부터 알아야”= 선거철 연례행사인 대기업 때리기가 올해는 예사롭지 않게 흘러가면서 재계도 본격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다수 전문가들은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고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준다고 주장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기업은 물론 국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아래 여러 가지 경제정책을 포함시키는 것은 ‘민주화’의 후광으로 정당성이 약한 자신들의 철학이나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재계는 국가가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한다면 법치국가의 원리에 의거해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경기침체와 고물가, 높은 실업률, 사회양극화 등의 원인이 대기업에만 있는지, 시장 혹은 정부정책의 실패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