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개선 조선업계 승승장구…끊임없는 R&D 경쟁력 확보, 최초 '선박 인도 1억톤' 달성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남상태 대우조선 사장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한 지난 1년여 동안의 우여곡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들로 하여금 얻어진 결과는 의미가 깊었다.
남 사장은 "고부가가치 복합 공사인 FPSO를 턴키 방식으로 건조하기 위해선 상부구조물과 선체를 포함한 종합적인 건조 능력이 필수"라며 "다수의 FPSO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그룹 역량이 빛을 발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조선산업의 주력 선종이 바뀌고 있다. 과거 탱크선, 벌크선, 중형 컨테이너선 등을 주로 건조하며 ‘조선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최근 해양플랜트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들을 집중적으로 수주하며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재정위기로 전세계 선박 발주시장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가 나 홀로 수주 대박을 터뜨린 것도 이들 고부가 선박에 집중한 전략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총 5척, 11억달러 규모의 LNG선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중공업이 노르웨이 LNG 선사인 골라로부터 LNG선 2척을 추가로 수주했으며, STX조선해양도 러시아 국영 해운선사인 소브콤플로트로부터 17만㎥급 LNG선 2척을 4억달러에 수주했다. STX조선해양이 수주한 LNG선은 증발 가스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강화된 화물창 보온시스템과 에너지 절감형 추진방식 등 친환경 설계가 도입될 예정이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천연가스 매장량과 생산량 모두 세계 1위인 러시아에서 LNG선을 수주한 것은 대규모 LNG선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플랜트, 싹슬이 수주행진= 조선업계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설정한 해양플랜트 분야 경쟁도 뜨겁다. 해양플랜트는 국내 조선업계가 확실하게 입지를 굳힌 상태다. 올 들어 총 5조원 규모의 대형 해양플랜트를 국내 조선사가 나란히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8일 2조원대 초대형 해양플랜트 수주에 성공했다. 오는 2016년 4월까지 인도하며, 호주 북서쪽 400㎞ 해역에 위치한 익시스 광구에서 운영된다. 광구의 지명을 따 '익시스 FPSO'로 이름을 붙였다. FPSO의 선체 부분(Hull)과 상부구조물(Topside) 부분을 설계부터 구매, 생산, 설치, 시운전까지 모든 공정을 자체 기술로 수행한다.
앞서 삼성중공업은 일본계 호주 자원개발업체 인펙스(INPEX)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가스처리설비(CPF) 본 계약을 3조487억달러 규모의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동종플랜트 가운데 역대 최고 금액이다.
우리 조선사들이 높은 기술력으로 인해 다른 국적의 경쟁상대가 없는 만큼 상당기간 독보적인 해양플랜트 수주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올 한 해 현대중공업(240억달러), 삼성중공업(125억달러), 대우조선해양(110억달러)은 수주목표액을 보수적으로 잡긴 했지만, 60% 이상을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자원개발과 관련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만 총 105억달러어치(현대삼호중공업 포함)를 수주했다. 이는 조선ㆍ해양플랜트 전체 수주액 182억달러의 약 60%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의 조선·해양플랜트 전체 수주액에서 해양플랜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7년 6.6%에 불과했지만 2008년 18.9%, 2010년 28.9%, 2011년 57.7%로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대우조선해양의 전체 수주금액에서 해양플랜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7년 23.2%에서 올해 43.8%로 두 배 가량 높아졌다. 삼성중공업은 가장높은 63%로 해양플랜트 전문업체로 불러도 손색 없는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해양플랜트 비중은 전체 수주량의 20~30%대에 불과했다.
올 들어서는 해양플랜트에 대한 쏠림이 더 커질 전망이다. 올 상반기 호주·나이지리아·러시아·베트남 등지에서 140억달러 안팎의 해저 원유·가스 개발용 해양플랜트 발주가 잇따를 예정이다.
◇연구개발 만이…독주 비결= 조선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끊임없는 연구개발(R&D) 노력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LNG선 분야에선 화물창 국산화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LNG 화물창은 영하 163도에서 액화된 천연가스를 저장하는 탱크로 LNG선의 핵심설비다. 그동안 국내 조선업계는 LNG선 화물창 제작기술이 없어 원천기술을 가진 외국 업체에 기술료를 지불해 왔다.
STX조선해양은 자체 기술로 독립형 LNG 화물창을 개발해 노르웨이 선급협회로부터 기본승인을 받았다. 삼성중공업도 선체와 저장탱크가 일체화된 멤브레인형 LNG선 화물창 국산화에 성공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는 친환경 선박에 대한 기술개발도 두팔을 걷어 부쳤다. 대우조선은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 선박추진 시스템을 개발하고 본격적인 영업활동에 나섰다. 기존 벙커C유가 아닌 LNG를 주연료로 사용해 동급 출력의 디젤엔진에 비해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3%, 질소화합물(NOx) 80%, 황화합물(SOx)은 95% 이상 감소시킬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밸러스트수 처리장치인 '하이밸러스트'를 개발, 정부의 최종 승인을 획득했다. 하이밸러스트는 이 밸러스트수를 전기분해장치로 살균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기술 개발을 통해 오는 2016년 15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밸러스트수 처리장치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선박 인도 1억톤…韓 조선업, "위상 높였다"= 지난 8일 오전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본사에서는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과 카일 워싱턴 캐나다 시스판사 부회장 등 관계인사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박 인도 1억톤 달성’ 기념식이 열렸다. 전 세계 조선사 중에서 최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창업한 1972년 3월 울산 조선소 기공식 이후 40년 만에 '선박 인도 1억톤 (GT, Gross Tonnage) 달성'에 성공한 것이다. 총톤수를 의미하는 GT는 뱃머리부터 배꼬리까지에 이르는 갑판 이하 선내 전 용적을 '2.83㎥=1톤'으로 해 계산한 값이다. 1억톤은 2억8300만m³로 시내버스 321만대 혹은 서울월드컵경기장 59개에 해당하는 부피다. 지난해 전 세계 선박건조량이 1억40만톤 가량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983년에 건조량 기준 첫 세계 1위에 오랐다. 현재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15%에 이른다. 그동안 49개국 285개 선주사에 총 1805척의 선박을 인도했다. 선종별로는 컨테이너선이 510척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유조선(351척), 벌크선(342척), 정유제품 운반선(124척)의 순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울산과 군산에 11개의 도크를 보유하고 연간 100척이 넘는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연간 최대 건조량은 1300만톤으로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건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1억톤 달성은 세계 1위 기술력과 경쟁력을 확인하고 한국 조선업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