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영향력 확대하는 오너 3세
그 동안 이 사장은 이 회장 차로 같이 출근한 적은 몇 차례 있지만 공식 행사에는 늘 먼저 나와 이 회장을 맞았다. 하지만 이 날은 한남동 이 회장 자택에서부터 승용차에 동승해 행사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3세 승계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이 사장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2012년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오너 3세들의 영향력 강화다. 승진을 통해 그룹내 영향력을 키운 경우도 있고 승진하지는 않았지만 그룹내 조직개편 등을 통해 입지를 더욱 키우기도 한다. 맨땅에서 대기업의 토양을 일궈낸 창업 1세와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키워온 2세와 달리 3세들은 소통과 혁신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역할이 요구된다.
◇오너 3세, 한걸음 더 앞으로 =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올해 인사에서 부회장 승진설이 나돌았지만 승진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룹 측에서도 1년 만의 부회장 승진은 다소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업구조와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대내외 행보를 넓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26일 삼성전자는 삼성전기로부터 지분 50%를 매입하며 삼성LED를 흡수합병했다. 삼성LED는 삼성그룹의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다. 같은 날 삼성전자는 소니와 합작을 끝내면서 S-LCD도 자회사로 편입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삼성테크윈에서 분사한 삼성디지털이미징도 흡수했다.
삼성SDI의 사업을 분사시켜 삼성전자와 지분을 나눈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도 올해 안에 삼성전자로 합쳐질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품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하는 반면 재계 일각에선 “이재용 사장의 삼성전자에 힘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이건희 회장은 만 45세이던 지난 1987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 2010년 12월 입사 20년 만에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사장은 1년 후면 만 45세가 된다.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금호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손자 박철완, 박준경 부장을 나란히 상무보로 승진시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지 닷새 만이다. 계열분리를 앞둔 두 그룹이 3세 승계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아시아나의 계열분리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양 그룹의 3세들이 경영 일선에 배치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외아들 구본혁 ㈜LS 부장도 LS니꼬동제련 이사로 승진하며 오너 일가 3세 중 처음으로 임원이 됐다.구 이사는 국민대와 미국 UCLA MBA를 나와 2003년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LS전선에 입사했다. 2009년 지주사인 ㈜LS로 옮겨 경영기획팀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앞으로 아버지인 구자명 회장 밑에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게 된다.
◇올해가 시험대다 =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바통’을 넘겨받은 오너 3세들은 미국 등에서 MBA 과정을 이수한 경우가 대부분인 관계로 글로벌 경영감각이 뛰어나다. 또 부친의 회사에 입사해 체계적으로 실무능력을 쌓고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하지만 아직 아버지의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올해 오너 3세들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향후 한국 경제계를 책임질 거대 기업을 이끌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어떤 역량을 보여줄 지가 향후 승계 구도와 시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재용 사장은 이건희 회장과 함께 오는 10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참석한다. 특히 COO(최고운영책임자)로서 애플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고객사 CEO들과 교류를 확대해 온 만큼 올해도 큰 활약이 예상된다.
정몽구 회장에 늘 가려져 있던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내실 경영을 통한 글로벌 일류기업 도약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경영 전면에 한발 더 나설 전망이다. 유럽 등 선진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에서도 소비심리 급랭 조짐이 나타나면서 위기 의식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의 활약이 주목된다.
최근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에서 부회장급들을 일선에서 대거 퇴진시킨 것도 정의선 사장의 경영전면 배치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사업인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복합 쇼핑몰과 온라인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어려운 환경이지만 투자와 성장을 멈출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마트 TV’ 등 제조업과 유통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도가 계속될 지 주목된다.
한진그룹 3세들도 올 한해는 중요하다. 지난 2009년 나란히 승진한 장남 조원태 전무와 장녀 조현아 전무는 서로 차별화된 실적을 보여줘야한다. 지난해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광고담당과 IMC팀장을 맡아 대한항공의 TV광고 캠페인을 총괄 주도하며 좋은 평가를 받은 조현민 상무의 올해 활약도 기대된다.
한화그룹 입사 3년차를 맞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에게도 올해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다. 한화그룹 신성장동력인 태양광 사업이 최근 전세계적인 불황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의 젊은 마인드로 해법을 찾아 낼지 주목된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 허윤홍 GS건설 상무보는 최근 임원 승진을 계기로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