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왜 갑자기 수수료 문제로 들끓는가?

입력 2011-10-2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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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으로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다. 카드 수수료, 은행 수수료, 백화점 수수료 등 높은 수수료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이번처럼 불만이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긴 처음이다.

금융권 탐욕에 대응해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내건 시위가 전세계로 확산되며 자본주의 전반의 모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수수료를 내려라’는 요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먼저 식당과 주유소 등 중소가맹점과 카드사의 수수료 문제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카드수수료가 높다는 비판이 전방위적으로 제기되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이 가해지자 카드사들은 수수료율을 낮추기로 했다. 하지만 양측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은행들의 높은 예대마진과 수수료도 도마에 올랐다.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한 은행권이 수수료 수입으로 앉아서 서민들의 푼돈을 챙긴다는 비판이다.

유통업체 판매수수료도 논란의 대상이다. 백화점·TV홈쇼핑·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상품군별로 최고 40%까지 달하는 등 높은 수수료를 납품업체들에게 부과한다는 조사가 지난 6월 발표되자 유통업체들의 ‘수수료 장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백화점 업체들 간의 수수료 인하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

갑작스레 수수료 문제가 전사회적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많은 여타 국가들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접어들면 부의 분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듯 우리나라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들도 소득이 2만달러 수준에 왔을 때 분배 문제로 큰 갈등이 생기는데 2만달러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최근 나타난 수수료 갈등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 불로소득 ‘수수료’에 집중해 폭발 = 부의 불평등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자본주의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에 불만이 수수료에 집중됐다는 것. 수수료는 대표적인 불로소득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가 어려우면 분배의 문제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특히 경영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가맹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수수료 문제가 확산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의 31.8%로 OECD 국가 평균 16.1%에 두 배에 육박할 정도로 과다했다. 한정된 시장에서 자영업자 수가 적정 수준을 훨씬 넘는 구조상, 노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돌아오는 이득의 양이 적기 때문에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에 따라 적용되는 수수료율 = 무엇보다 이번 수수료 갈등은 금액 자체가 높은 것도 문제지만 힘의 논리에 따라 수수료율에 차이를 두는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 것도 특징이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권에서는 VIP 고객과 일반 고객, 카드사에서는 대형가맹점과 일반가맹점, 백화점에서는 국내업체와 해외명품업체 간에 적용하는 수수료율이 불공평하다는 것이 이번 사안의 핵심쟁점이다”라고 지적했다.

◇국민 여론 의식한 정부와 정치권의 합작품 = 정부의 공정사회 정책기조와 내년 총선도 수수료 인하 시위를 더욱 불붙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주장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정사회 분위기가 어려운 살림살이로 울고 싶은 서민들의 뺨을 때려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쳐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정부가 정권말기 정책기조를 급선회해 다시 기업들을 압박하며 시장경제의 원칙을 무시하고 수수료를 반강제로 인하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 있는 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현실성 없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거래 상대와 규모, 업종과 상관없이 카드가맹점 수수료율을 차등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발의한 법안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앞으로 수수료로 불거진 더 공평한 부의 분배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서울시장 선거를 거쳐 내년 총선 정국에서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위원은 “서울시장 선거를 앞 둔 지금의 움직임은 배아 상태이며 내년 총선에서는 더 커질 것”이라며 “향후 대선에서 체계적인 고민과 사회적 합의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권 수준이 이 같은 국민대계를 짤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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